[제주포럼]통합행정시의 정체성
[제주포럼]통합행정시의 정체성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지방선거가 끝난 얼마 전 충북 괴산군의 일이다.

취임 한 달을 갓 넘긴 군수가 지역내 이장과 새마을지도자 830명에게 호소문을 띄웠다.

“지금은 갈등을 해소하고 주민화합을 이뤄 지역경제를 활성화해야하는 중요한 시기”라고 운을 뗀 이 서한은 ‘제발 사업구상할 시간을 달라’는 게 요지다.

취임 후 하루 평균 10명 이상이 군수실을 찾아오는 통에 민원폭주로 정작 해야할 일을 못한다는 하소연이다.

“읍 ·면장이 해도 될 일을 군수가 간섭하게 되면 조직체계가 깨지고 불합리한 집행이 이뤄질 수도 있으니 주민들의 오해가 없도록 설득해 달라”는 대목은 요즘 특별자치도를 바라보는 도민 입장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나아가 재정권이 아예 사라져 주민들의 방문에 덜컥 긴장감이 앞선다는 통합행정시의 실상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지난 7월 1일 도민들의 설레임과 국가적 관심 속에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한 지 3개월 째를 맞았다.

당초 계획은 4개 시 ·군 체제에서 2개 통합행정시로 전환함으로써 중복업무, 지역 불균형, 계층간 갈등, 예산 낭비 등을 줄이려 했다.

행정시스템상의 문제와 개선방안을 도출해 향후 제주의 미래를 이끌어 갈 수 있는 ‘큰 행정’의 실현을 위한 고육지책인 셈이다.

하지만 요즘 특별자치도의 중추적 역할을 해야할 통합행정시의 사정은 어떤가.

출범 초기의 의욕과는 달리 시행착오가 남발, 도민들의 희망이 희석돼가고 있음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마디로 자력행정이 주어지지 않아 공중에 붕 떠있는 형상이다.

말이 행정시일 뿐이지 자체적으로 살림을 꾸릴 수 있는 법적권한이 뒤따르지 않아 지자체로서 기능이 마비된 ‘뇌사상태’와 다름 아니다.

이에 행정의 난맥상이 곳곳에서 분출되고 있다. 예컨대 명확한 사무배분이 정립되지 않아 이른바 ‘맛 좋은’ 업무는 특별도가 맡겠다 하고, ‘골치 아픈’ 일은 행정시로 떠넘겨지고 있다.

실제 관리가 까다로운 보물 ‘관덕정’이나 미분양상태로 방치되는 ‘한림중앙상가’, 노후시설인 ‘중앙지하상가’ 등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제주시 손에 넘겨졌다.

또 시 ·군 통합 이후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각종 특수시책들이 불투명한 예산으로 중도하차할 위기에 놓였다.

전국의 지자체가 관심을 보이며 벤치마킹해가는 ‘클린하우스제’와 신제주 대형 공영주차장, 저지예술인마을 조성사업 등이 여기에 속한다.

시정 운영에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예산편성권이 주어지지 않기에 그렇다.

여기다 자치권을 상실한 통합행정시의 위상은 대외적으로도 말이 아니다.

우선 정례적으로 열리는 ‘전국 시장 ·군수회의’에서 조차 초청받지 못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또 중앙부처의 각종 시책평가 대상에서도 배제된다. 말 그대로 허울만 좋은 ‘속빈 강정’인 셈이다.

얼마 전 김태환 지사는 “임기내 행정시는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며 행정시의 존폐 논쟁을 서둘러 정리했다.

그렇다면 행정시 공무원들이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의욕을 북돋아줘야 한다.

소속직원에 대한 인사권 보장이나 자체사업만이라도 능률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일정 수준의 예산편성권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

‘권한나누기’라는 부정적 인식보다는 책무와 역할 분담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그래야만 도정은 국가경영전략에 충실을 기할 수 있고, 행정시에는 활력을 불어넣으며, 주민들의 불편을 덜어주는 일석삼조의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행정시공무원들의 자조섞인 탄식에 귀기울여 잘못됐거나 불합리한 부분은 하루 빨리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다.

특별자치도의 궁극적 목적은 제주인의 삶의 질을 높인다는 데 이론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함성중 사회2부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