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정의지수는 몇 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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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민숙. 시인 / 금능꿈차롱작은도서관장
얼마 전 케이블 TV의 한 예능프로에서 ‘취약노동자’들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행동에 대한 몰래카메라를 실시한 적이 있다. 취약노동자와 그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시민 역할을 연기자가 연기를 하면, 그 현장을 다른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까? 라는 실험이었다.

폐지를 수집하는 할아버지가 차도에 실수로 폐지를 쏟고 젊은 여성 운전자가 할아버지에게 막말을 하는 장면, 청소부가 청소도구로 다른 사람의 옷을 오염시키고 그 사람이 청소부에게 막말을 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목격한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많은 사람들이 내 일이 아니라는 듯 그냥 지나쳐 갔고, 몇몇 사람들은 쳐다보면서 관심을 보이긴 하지만 선뜻 나서지는 않았다. 많지는 않았지만 직접 나서서 폐지를 수레에 같이 담아주는 사람도 있었고, 시간 없다고 쓰레기를 빨리 치워달라며 막말하는 여성 운전자에게 따끔하게 훈계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또한 세탁비를 대신 물어주겠다며 사람이 먼저지 옷이 먼저냐고 흥분하는 사람도 물론 있었다.

이때 제작진이 의도한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되었다. 먼저 관심을 보이긴 했지만 선뜻 나서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이 나서서 그 현장의 중재에 들어갔을 때 모두 함께 거들더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막말을 하는 사람의 겉으로 보이는 신분이나 재력, 연령에 따라 중재자의 수가 혹은 중재의 강도가 달라지더라는 것이다.

이처럼 정의로운 일에 먼저 나서기란 쉽지 않다. 정의로운 일에 나섰다가 피해를 본 경험이 많았기에 사람들은 마음이 있어도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몸을 사리게 된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사회계층 사이에서 상대방의 신분, 권력, 재력만으로도 충분히 주눅이 들어버리는 그런 시대를 걸어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필자 역시 정의지수를 매기라면 낙제 점수다. 한참 인신매매와 장기매매 말이 돌때는 아이들에게 길가에서 짐을 진 할머니를 만나도 모른척하라고 교육을 시켰고, 성폭력범이 이슈가 될 때는 어른들의 친절에 경계하라는 교육도 시켜야만 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모든 것에 의심을 갖게 되는 습관도 붙고, 사회에 대한 불안감 역시 점차로 커지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된 사회에서 다시 이런 몰래카메라 상황을 연출한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으로도 한숨이 나온다. 불의를 보고도 모른척해야만 안전한 이 사회를 탓할 것인지, 점점 몸을 사리게 되는 우리가 반성을 해야 될 것인지, 몰래카메라 예능프로를 보면서 씁쓸하기만 했다.

그렇지만 앞서 말한 실험에서 보여주듯이 불의에 먼저 용기를 내 주는 몇몇 사람들이 있기에 그들의 작은 행동 하나가 얼마나 큰 사회적 나비효과를 불러오는지 희망을 볼 수 있었다.

갑오개혁이 일어난 지 120년이 되는 갑오년을 맞았다. 각 기관이나 단체 등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 보자는 움직임이 많다. 그러기에 앞서 사람으로서 가장 근본적인 자세를 먼저 키우는 것이 더 우선일 것이다.

올해는 나비효과를 불러올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사람의 신분이 아니라 사람의 언행으로 평가받는 그런 한 해가 되었으면, 아이들에게 진정한 정의가 무엇인지 자신 있게 교육할 수 있는 당당한 갑오년이 되었으면 한다.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내 정의지수는 몇 점일까?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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