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말년(末年)은 노을처럼 아름다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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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구. 시인 / 수필가
제주시 사라봉의 사봉낙조(紗峰落照)는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노을이라고 할 수 있다. 사라봉 정자 난간에 기대어 바라보는 저녁 노을은 말로 형언하기 어려울 만큼 황홀하고 아름답다. 우리 인생의 말년을 이 낙조에 비유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인생 노을을 구경거리로 삼길 좋아하고 실제로 그 결과가 어떠한지 늘 지켜본다.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이른바 높은 자리에 앉았던 사람들의 말년에 대해 관심이 크다. 이런 세태(世態)는 동서고금이 다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지금 우리 제주 사회의 정가에서는 나이가 들수록 현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노욕(老慾)과 더 뻔뻔함으로 변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도무지 나이 듦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회인 것만 같다. 수명은 길어졌지만 삶을 성찰하는 시간은 도리어 짧아졌다는 느낌이다.

인생은 정상으로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오는 것이 더 힘들다고 말한다. 정상에 서 본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희열과 특권은 분명히 있고, 그것을 놓치지 않고 오래 간직하고 또 차지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끝까지 노욕(老慾)에 매달리다가 추한 모습으로 떠밀리다시피 내려오고, 지혜로운 사람은 적기를 알고 미련이 남아도 물러서며, 다른 사람의 이익을 위해서도 헌신하고 봉사하며 그 가운데서 아름다운 삶의 희열을 느낀다.

필자는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겁난다. 늙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다. 제대로 늙고 싶다. 그런데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나이 드는 법을 제대로 보여주는, 따라하고 싶은 사회 지도층의 어르신은 찾아보기 힘들다. 나이가 들수록 경험과 많은 것을 볼 줄 아는 혜안이 많을 테니, 그 만큼 인생에 대해 후대가 경청할 만한 가치있는 말과 행동을 기대하기 때문에 실망이 크다.

우리 사회가 바로서기 위해서는 어르신들이 경험으로 터득한 지식과 지혜를 후대에게 물려줘야 한다. 즉 자연이나 외부 위협을 슬기롭게 이기는 지혜일 수도, 삶에 대한 깨달음으로부터 나오는 조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해가 질 때 노을이 아름답듯, 나이가 들수록 더 아름다워져야 한다. 나이가 들면 “100번 잘하기보다 한 번 실수와 실패하지 않도록 행동에서 스스로 자숙하고 주의하라.” 17세기 작가 발타 그라시안(Balthsar Gracian)의 세상을 보는 지혜의 책 속 내용이다. 이 책의 내용처럼 찬란한 태양일 때는 아무도 바른 얘기를 하지 않는다. 그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머리를 조아리고 싫은 소리나 민심의 소리엔 눈과 귀를 막아 버리는 인의 장막에 둘러싸이게 된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보이는 것만이 아닌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아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노욕을 부리다가 실패와 좌절을 맛보게 될 것이며,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지도 모른다. 세상의 평판(評判)은 찬란한 태양일 때보다 말년에 과실을 험담한다. 세상살이 근본은 예나 지금이나 이렇게 간단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인생 법정의 평판에 신경을 쓰는 것은 그런 탓일 것이다.

높은 자리일수록 더욱 물러나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정상의 자리에서 욕심을 버리고 노을처럼 아름답게 물러날 때, 사람들의 가슴에 긴 여운을 남길 것이다. 또한 인생의 말년에 남는 건 따뜻한 마음씨로 베풂과 덕행이다. 경제위기 속에서 고통 받는 이웃을 돕는 사랑과 자비의 실천이 해가 질 때 노을이 아름답듯 나이듦이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 떠난 뒤에도 그대로 남아있는 것은 덕행과 베풂의 흔적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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