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의 아픔을 넘어서 평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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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철. 前 제주문화원장 / 수필가
지난 1월 17일 정부에서는 ‘각종 기념일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제주도에서 시행하던 4·3위령제를 국가기념일로 지정하는 내용을 담은 것이다. 대통령의 재가 및 공포의 절차만 남았다. 명칭은 공모를 통해 ‘4·3희생자 추념일’로 정했다.

제주는 ‘평화의 섬’이다. 2005년 1월 27일 정부로부터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되었다. 그 선언문엔 “삼무정신(三無精神)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제주4·3의 비극을 화해와 상생으로 승화시키며…” 라는 대목이 있다. 제주인의 본디 삶이라 할 수 있는 도둑 없고, 거지 없고, 대문 없는 신뢰사회를 되살려 4·3의 상처를 씻어내고 명실 공히 평화의 섬으로 정착시키자는 것이다.

4·3은 제주를 불신 사회로 돌변시켰다. 주민들은 무장대와 토벌대 사이서 살아남기 위해 모함과 고자질로 극도의 불안에 떨고 있었다. 광복의 언저리에서 야기된 이데올로기의 투쟁으로 하여 수많은 제주인의 생명을 앗아갔다. 뒤이어 벌어진 6·25전쟁도 전 국토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그 배후엔 소련과 중국이 있었다. 그러나 냉전이 끝난 이후 원수나라였던 그들과 대한민국은 국교를 정상화하고 경제협력으로 상생을 이루었다. 그러나 한국과 북한은 아직도 소모적 대결을 계속하고, 제주4·3도 좌우의 갈등을 끝내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지난해 4·3유족회와 경우회가 만나 화해를 선언했다. 함께 4·3평화공원과 충혼묘지를 찾아 참배한 것은 화해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4·3을 국가 추념일로 지정하기 위한 입법예고를 하자 불협화음이 일고 있다. 4·3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남노당 간부와 무장대들이 희생자로 안치됐다는 게 이유다. 그들도 극복해야 할 대상이지 싶다.

제주도에서는 제주4·3평화문학상을 제정 운영하고 있다. 인권 신장과 민주 발전, 국민 화합과 평화 정착에 이바지하기 위함이다. 4·3문학상이라 해서 4·3만을 소재로 다루는 것은 아니다. 소재가 달라도 목적에 부합하면 된다. 응모자도 제한이 없다. 국적도 불문이다. 4·3의 아픔을 평화로 승화시키는 데 무슨 구분이 있을 것인가.

지난해 시행한 제1회 공모에서 시부문은 ‘곤을동’이, 소설 부문은 ‘검은 모래’가 당선되었다. 시 ‘곤을동’은 역사적인 소재를 주변의 일상 언어로 시화하는 데 성공한 작품으로 평가되었다. 소설 ‘검은 모래’는 제주 우도 출신 출가해녀의 4대에 걸친 삶의 이야기이다. 한 가족사에 얽힌 진실과 오해, 그리고 화해라는 정점에 도달하기까지 오랜 질곡의 세월을 살아온 신산한 삶을 소설 속에 녹여내고 있다. 사랑하고 배려하고 베풀며 오순도순 살아간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노력하는 자에게 희망이 있음을 얘기하는 평화 지향적 소설로 평가 받았다. 제2회 공모도 마감되어 오는 4월 3일 이전에 당선작이 나올 참이다. 기대가 크다.

작은 아픔은 세월 따라 잊히고 치유되지만 큰 아픔은 저절로 치유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용서하면 된다. 용서는 끌어안음이다. 부화뇌동해 방화, 살상, 납치에 앞장선 사람들까지 품는 것, 그게 큰 용서이다.

이제 4·3희생자 추념일의 시행으로 좌우의 이념을 넘고, 진보와 보수의 공방을 그치고, 죽고 죽인자의 응어리가 풀리고, 무장대와 토벌대란 살벌한 말도, 항쟁이나 폭동이란 말도 뒤안길로 사라졌으면 한다. 시대의 아픔인 4·3희생자, 그 서러운 영령들을 위령하는 일에만 오롯이 마음을 모았으면 좋겠다. 이것이야 말로 참다운 화해요 상생이다. 미래를 향한 온전한 평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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