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 삶을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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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주. 수필가
유대인들의 삶과 역사를 들여다보면 정신이 육체와 삶을 지배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들은 약 4000년의 역사 중 2000년 이상을 나라 없이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면서 온갖 설움과 학대를 받았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위대한 인물들을 가장 많이 배출한 민족이기도 하다. 경제·의학·물리학·화학·문학 등에 걸친 노벨상 수상자들, 미국의 명문대 교수진, 그들의 30% 정도가 유대인이거나 유대계 학자들이다. 또 미국 최상위 가정의 42%정도도 유대계라면 놀랍지 않은가. 그들의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정신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사람들은 성서와 탈무드를 통한 정신교육에서 그 연유를 찾는다.

탈무드의 기본 정신은 정의와 평화, 진실의 추구다. 어릴 때부터 삶의 철학을 갖도록 인도해주는 지혜서(智慧書)로서 그들의 삶을 이끌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랜 세월 갖은 역경과 박해 속에서 살아야 했으므로 그 고난을 이겨낼 지혜와 철학이 필요했으리라. 그런 절실함에서 탄생됐으니 그들의 성서와 비견할 삶의 지침서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유대인 한 명당 한 권씩 가지고 있다는 탈무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평생 읽어도 항상 새로움을 더해주는 책이라니 참으로 부러운 정신 유산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의 교육현실은 어떠한가. 충(忠)과 효(孝)를 중시하던 전통 교육 사상은 온데간데없고, 학교 교육은 입시와 취직이라는 수단의 갓길로 비켜서 버렸다. 가정교육은 학교 교육을 좇기에 급급하고. 이 모두가 정도의 일탈이다. 그러니 인간 존중의 가치나 정신을 함양할 교양이나 철학은 찬밥신세다.

교양교육은 실용교육 못지않게 중요하다. 미학적인 삶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교양 있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이성과 감성이 조화로운 사회가 될수록 살맛나는 사회가 된다. 시를 읊는 목소리가 들리는 교실, 노랫소리 울려 퍼지는 교정, 화단의 꽃과 나무들이 화폭에 옮겨지고, 우정과 사랑이 문학의 소재가 되는 그런 학교, 그런 교육일 수는 없을까?

삶은 단순할수록 행복에 다가가기 쉽다. 교육도 아이들의 심성코드에 맞아야 즐겁게 배우고 익히며 바르게 성장할 수 있다. 심성이 바른 인간다운 인간이 될 때, 그가 가진 지식이나 능력도 자신과 사회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개개인의 철학이나 가치관은 행동을 지배하고, 행동은 삶을 결정하게 된다. 이는 전문지식과 더불어 인문학적인 소양과 철학, 그리고 예술적 감성의 겸비가 조직이나 사회 지도자의 자질 요건임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인문학적인 지식은 전체를 헤아리며 역지사지하는, 그리고 나와 다른 생각과 사물들을 포용하는 능력의 기반이 된다. 지도자의 생각과 철학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행동과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이 또한 동서고금의 역사가 보여주는 비근한 사실이다.

그런데 오늘의 우리의 교육을 통해 길러지는 꿈나무들이 과연 그런 능력과 덕성을 겸비하게 될지는 의문이다. 경쟁과 승자 독식의 살벌함 속에서는 이기와 독선만이 최고의 가치로 신봉되고, 공감의 여유는 들어설 자리를 잃게 된다. 따라서 구성원들은 반목과 질시, 투쟁과 갈등에 매몰되고, 우리가 사는 사회는 점점 삭막해 지리란 우려가 앞선다. 작금의 현실에서도 그런 조짐들이 서서히 나타나는 건 아닌지…. 인간을 재화(resource)로 바라보는 냉혹한 기업의 시선과 인간의 존엄을 쓸모에서 찾으려는 사회풍조, 이에 초점을 맞추려는 우리의 교육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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