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과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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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시인 / 수필가
   
2014동계올림픽대회가 열린 ‘소치’가 금메달 소식으로 낯익게 다가왔다.

이상화의 금메달 소식은 한밤인 것도 잊게 한 감동이었다. 금메달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보여준 이런저런 스토리텔링이 곧바로 전해지면서 감동을 더했다. 어려운 환경을 이겨낸 당찬 소녀시절 이야기, 군살 박인 선수의 발바닥, 하지정맥을 견딘 산악훈련, 60센티라는 허벅지…. 더욱이 시상대의 가장 높은 자리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지자 연신 눈물을 흘리던 선수의 모습을 보며 다들 울컥했으리라. 대한민국은 곧 ‘우리’라는 동질감, 하나로 묶인 소속감, 그것은 그렇게 진하고 강렬하다.

안현수 선수의 러시아 귀화 뒷얘기에 분노한 것 또한 같은 맥락이란 생각이다. 쇼트트랙에 금메달을 러시아에 안긴 생뚱맞은 아이러니 앞에 가슴을 쳤다. 그는 가장 먼저 결승점에 도달한 직후 러시아의 폭발적인 환호 속에 러시아 국기를 흔들며 링크를 돌았고, 관중석에서 숨죽이던 그의 아버지와 한국인 연인은 오열했다. 그가 시상대에 올랐을 때 올라간 것은 태극기가 아니었고, 흘러나온 주악도 애국가가 아니었다. 러시아 국기, 러시아 국가였다. 왜 그런 탁월한 기량의 선수를 외국으로 내쳤는가. 빙상 내부의 구조적 난맥이 자초한 돌이킬 수 없는 낭패다. 세계에 드러난 우리의 치부에 낯부끄러웠다.

이제 그는 러시아 국민 영웅으로 대접받게 됐다. 그리고 운동을 이어 갈 수 있는 좋은 환경 속에 미래에 대한 확고한 보장이 주어진다 한다. 그래도 심중은 착잡할 것이다. 빙상의 정황을 나는 모른다. 다만 정시해야 할 것이 있다. 파벌주의가 쓴 서사는 소설보다 훨씬 극적이었다는 사실이다.

놀라운 일이 또 있었다. 여자 컬링 선수들이 태릉선수촌에서 식사도 못했다는 것. 비인기종목이라는 이유로 식사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얘기다. 엄연히 국가대표선수임에도 선수촌에서 밥도 얻어먹지 못했다니, 이 웬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인지.

“컬링의 경우, 비인기종목이라는 이유로 태릉선수촌 식사 대상에서 제외돼 선수들이 외부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해야 했다.”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최고위원이 비인기종목에 대한 열악한 처우를 지적해 한 말이다.

승부 조작이다 뭐다 심상치 않은 얘기들이 떠돌았지만 체육계에 깔린 부조리가 이 지경이란 말인가. 동네 선수도 아닌, 명색 국가대표선수들에게 밥도 제대로 먹이지 않았다니 소도 웃을 일이다. 메달 획득 가능성이 적은 종목으로 인식되면서 다소 간 못 미치는 대우가 있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국가대표선수라는 수준이 이렇다면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소치에 출전한 컬링의 다섯 선수는 의외로 선전했다. 4강 진출이 무산됐지만 세계랭킹 10위인 미국을 11:2로 대파하는 쾌거를 일궜다. 4년 뒤, 평창대회의 기대감을 끌어올리면서 10개국에만 주어지는 올림픽 진출 티켓을 당당히 거머쥔 것. 그들은 낯선 컬링을 개척했다. 새로운 인기종목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이바지한 것이다. “눈물을 꾹 참고 다시 시작해야죠.” 팀장의 목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정부의 핵심부서에 취임한 한 장관이 공공연히 했다는 말.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들은 많은데, 어째서 법대 출신들이 안 보일까요? 법대 출신이 일을 더 잘하는데.” 학력 파괴를 말로만 떠드는 사회. 편견과 차별이 발목을 잡는 한 선진국 진입은 멀다. 아득한 것은 슬프다. 비인기종목이라 해서 국가대표선수들이 선수촌에서 식사도 하지 못하는 이 나라 의 풍토. 상식이 통하는 사회는 아직도 요원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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