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론] 꿈자리 다스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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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아는 이의 집에 함께 갈 일이 생겼다. 그런데 자기 집 앞마당에 같이 간 친구를 세워 두고 집주인은 나무 한그루로 향해 갔다.

잠시 동안 그 나무를 만지며 가지를 쓰다듬고는 되돌아와 이제 집으로 가자고 했다. 기다리는 사이에 혼자 궁금히 여기던 친구에게 그는 설명을 했다. 즉 그 나무는 자신의 ‘근심 나무’로, 집에 들어가기 직전에 지니고 있던 모든 걱정거리를 벗어서 걸어 놓는다.

하루 종일 풀리지 않아 씨름하던 잡다한 골치 거리들을 일단 자신에게서 떼어 내어 거기 맡기고 가벼운 마음으로 가족들을 만나 남은 하루 시간을 즐겁게 보낸다.

다음날 아침 집에서 나올 때는 나무로 가서 전날 벗어 놓았던 마음의 짐들을 다시 걷어 가지고 일터로 간다는 내용이다.

생활의 지혜를 다루는 이 비슷한 이야기들을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다.

부산하게 활동은 하지만 강열한 감동은 없는, 결국 밋밋하게 자신을 소모하는 산업사회 소시민인 우리들이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일상에서 충실한 순간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때문일 것이다.

삶의 질은 의미깊은 순간을 얼마나 자주 다양하게 갖느냐에 달려있을 것 같은데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 그런 시간은 드물고 아예 없는 날도 많아진다.

하루 종일 일 하고 날이 저물어서 집에 올 때도 일에 대해서만 생각하면서 근심으로 불안한 잠을 자는 날도 있다. 심지어 자다가 벌떡 일어나 이 밤이 언제 밝나 안절부절할 때도 있다. 쾌청하지 못한 기분은 주위를 물들이고, 이해와 사랑을 나누려는 사람들도 차단하면서 야속함과 섭섭함만 느끼게 하기 때문에 햇살 못 받은 식물처럼 몸과 마음을 시들게 한다.

마당도 없고 집 근처에서 근심 맡길 나무를 찾는 것도 쉽지 않으면 ‘드림 캣쳐(dream catcher)’라도 연구해 볼만 하다.

북미대륙 원주민들의 박물관에 흔히 전시되어 있고, 작게 만들어 기념품으로도 파는 물건인데 살펴보면 우리 주변에도 들어와 있다. 가늘지도 굵지도 않아 적당히 부드러운 나뭇가지를 둥글게 구부려 방석만한 원형의 테를 만들고 그 둥근 원을 얼기설기 노끈으로 엉성한 거미줄처럼 엮어서 크고 작은 구멍이 숭숭 난 체 같은 것이다. 그것을 잠자는 방 안 머리맡에 두면 꿈을 걸러내어 잡아두는 도구가 된다고 한다. 나쁜 꿈은 그 구멍을 통해 빠져 나가도록 하고, 좋은 꿈은 노끈에 걸려 남아있게 한다는 그들 종족의 전통적 믿음의 산물이다.

꿈자리를 잘 다스리는 것도 행복한 삶을 위한 전략의 하나로 삼은 것 같다. 사실 평범한 우리 눈에는 현실 생활만 중요하고 꿈같은 것은 별로 의미가 없어 보인다.

또한 우리 의식의 통제가 미치는 영역도 아닌데 꿈에 신경 쓸 이유가 있을까 하는 감도 든다. 하지만 땅 위로 솟아 우리가 볼 수 있는 줄기와 가지와 잎들만이 숲의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땅 속에서 활동하는 굵고 가는 뿌리들이 지상의 반대 편 어둠 속에서 또 다른 검은 숲을 이루지 않는가. 눈에 보이는 생활만이 삶 전체가 아니고 우리 내면의 어둠과 꿈도 중요한 뿌리처럼 작용하고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아주 거대한 드림 캣쳐가 있어서 우리의 꿈을 보호하고 가꾸고 있어서 뒤틀린 구석 많은 우리가 이나마 아직 생존을 유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달나라로 떠나든지 해야 고요함을 누릴 수 있을 정도로 지구는 온갖 전자음으로 시끄럽다 하고, 위성을 통한 감시망과 핵폭발의 위협 등은 이제 우리의 꿈 속 까지 파고드는 것 같다.

자살테러니 화하무기니 핵폭탄이니 하는 미친 꿈들을 인류의 머리맡에서 걸러내고 대신 보다 자유롭고 행복한 꿈들을 남기도록 드림캣쳐를 찾아내어 손봐야 할 때가 된 것도 같다.<강방영 한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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