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교사보다 더 문제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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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학교에서 교사에 의한 어린 학생에 대한 학대행위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파렴치한 교사들의 사례들이 인터넷과 신문 등을 통해 줄줄이 드러났다. 그런 일부 교사들의 사례보다도 더 큰 문제가 있다. 더 큰 문제는 같은 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면서도 그런 교사를 몰랐거나 혹은 알면서도 방치했던 동료교사들이다.

어떤 교사가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가학행위를 하고 있음을 동료교사가 몰랐다면 이건 진짜 큰 문제이다.

통제되지 않는 권력을 개인에게 준 것이다. 그리고 그 개인의 양심에 따라 교권이 마음대로 활용되어도 된다고 보는 것은 큰 문제이다.

물론 그 개인은 국가에서 부여한 자격을 취득한 개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무소불위의 권한을 주는 것은 곤란하다.

또 다른 경우는 교사답지 않은 교사가 교실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폭행을 저지르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래서는 안 되는데…’에 그쳐버린 동료교사의 문제이다.

이들은 소극적 가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다. 이들이 동료교사를 바라보면서 느꼈던 자책감의 무게는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교사들을 관리하고 감독할 책임이 있으나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교장과 교감 그리고 사태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침묵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의 시스템도 문제이다.

사실상 이들의 행위는 교육적 목적이라는 미명하에 미묘한 선상에 놓여있기 때문에 동료교사일지라도 어느 선 이상의 언급은 ‘쓸데없는 간섭’으로 치부될 수도 있다.

동료의식과 온정주의, 밥그릇은 빼앗지 않는 처벌방식, 방치와 무관심의 결과 그들은 교실에서 무소불위의 권한이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시험했을 것이다.

이들에게 학교는 직장이 아니라 오락장이 되어가고 학생은 양육의 대상이 아니라 오락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폭행과 가학은 적절한 제도와 관행으로 제어되지 않았고 결국에는 학대의 기억을 평생 안고 살아갈 학생들을 생산하고, 잘못된 것을 고발할 수 없었던 무기력감과 자책감을 가진 동료교사를 남겨놓고서야 멈추었다.

여전히 많은 교사들이 아직도 수면 아래서 알게 모르게 여전히 학대를 저지르고 있을 것이다.

성인이 된 우리들의 기억에서 학창시절 부당한 대접을 받았던 기억이 남아있는 사람이 너무도 많음을 생각해 보면, 교사답지 않은 교사가 너무도 많은 것 같기도 하다.

이들은 이미 무감각해져서 자신의 행동이 학대인 줄도 모르는 지도 모른다. 이런 교사들을 두둔 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런 교사들 역시 피해자이다.

가학행위의 초기에 적절한 통제시스템이 작동했다면 거기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묘한 시스템이 있다. 우월적인 지위가 남용되는 것을 동료끼리 방치하는 것이다.

동료교사가 학생들을 학대하는 것을 알아도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묻는 정도가 최선이다.

그 이상으로 가면 간섭이 되고 고발을 하게 되면 고발자가 오히려 악덕한 사람이 된다. 이것은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전체에 만연되어 있다.

결국은 조직의 자정능력이 없어진다. 조직의 문제는 조직원이 가장 잘 안다. 그런데 한솥밥 식구들끼리 서로 봐주기 시작하면 불법과 악행을 눈감아 주는 형국이 되어 버린다. 조직은 부패하고 조직의 당초 목적이 상실된다.

통제시스템의 부재는 내버려두고 개인에 대한 처벌로 그친다면 이런 일은 또 생길 것이다.

나는 이러한 못난 온정주의가 폭력교사보다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정범진 제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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