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밟히는 이들에 대한 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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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을식.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 / 소설가
   
진(晉)나라 환온(桓溫)이 촉(蜀)을 정벌하기 위해서 군선을 이끌고 양자강 중류의 협곡을 지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 병사가 벼랑 아래로 늘어진 덩굴 줄기를 붙잡고 놀고 있는 새끼원숭이 한 마리를 잡아왔습니다. 뒤늦게 알아차린 어미 원숭이가 강변 절벽을 따라 울부짖으며 며칠 밤낮을 달려 뒤따라오더니, 배가 강어귀에 이르는 순간 새끼가 있는 배로 뛰어들었습니다. 몸을 가누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헐떡거리던 어미는 곧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애절한 울음소리가 마음에 걸렸던 병사들은 무슨 까닭인가 싶어 배를 갈라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어미의 창자는 칼이라도 맞은 듯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습니다. 이는 세설신어(世說新語) 출면편(黜免篇)에 나오는 단장(斷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새끼를 잃은 애통함이 얼마나 극심했으면 뱃속의 창자가 다 끊어진 것일까요. 새끼를 잃은 어미의 심정, 그것은 인간사에서도 가장 깊고 처절한 슬픔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소치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의 결과에 일희일비하고 있을 때, 남녘의 부산에서는 단장(斷腸)의 고통에 몸부림치는 어미와 아비들이 있었습니다.

참사 소식을 접하고서 헤아리기 어려운 절망감과 함께 분노가 밀려들었습니다. 굴지의 리조트 전문회사가 건설해서 운영하는 다중이용 건축물이 내리는 눈을 이기지 못하고 비닐하우스처럼 무너져 내리다니 대체 이 무슨 터무니없는 사고란 말입니까.

문득 무너진 성수대교와 부서져 내린 삼풍백화점의 그 처참했던 광경이 떠올랐습니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기억하고 있을 그 참사가 이번 사고와 자꾸 겹쳐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기사에 따르면, 붕괴된 건물의 건축비는 평당 41만원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이는 같은 공법으로 시공하는 건물 건축비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하니, 어쩌면 이번 붕괴사고는 준비된 참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기상청의 폭설 예보에 대해 적절한 대비를 했어야 합니다. 더구나 하자보수에 관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신경을 써야했습니다. 그런데도 리조트에서는 별다른 안전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해당 관청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 같습니다. 리조트에서는 이 건물을 안전기준이 낮은 운동시설로 허가를 받고서 실제로는 다중공연시설로 써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사고는 어른들의 욕심과 안전불감증이 부른 인재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우리는 무슨 사고가 터지면 벌떼처럼 일어나 어딘가로 손가락질을 하는 것에 익숙합니다. 그렇지만 관련 책임자를 처벌하고 보상이 끝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망각합니다.

우리 어른들의 잘못으로 아름다운 젊은이들이 영문도 모른 채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 곁을 떠나갔습니다. 영결식장에서 그들을 부르는 절규의 조시가 지금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딸아, 아들아! 제발 내일 저녁은 우리 집 대문에 초인종을 눌러다오. 그리고 ‘엄마, 아빠 다녀왔어요!’ 라고 말해다오!”

자식을 가슴에 묻고 절규하는 이 어미와 아비들의 피울음을 우리는 언제까지고 기억해야 합니다. 다시는 이런 어이없는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히 따져서 그에 걸맞은 대책을 세우고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지금 자꾸 우리 눈에 아프게 밟히는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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