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론]철탑은 제주의 상징타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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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가 평화의 섬 상징물 건립사업을 본격 추진키로 했다. 내년 2월까지 평화의 섬을 각인시킬 수 있는 상징물 건립에 대한 기본구상과 타당성 조사를 끝내고, 2008년부터 상징물 건립사업을 착수하겠다는 것이다.

그것을 구상한 쪽에서는 에펠탑, 오페라하우스, 자유의 여신상 등과 같은 상징물이 들어서게 되면 제주의 평화 이미지가 부각될 뿐만 아니라 국제적 관광명소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모양이다.

제주의 상징물을 짓겠다고 벼른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김태환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제주시장으로 재직할 당시에도 국제자유도시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한다는 이유로 오라관광지구에 높이 230미터 내외의 전망탑과 복합휴양시설 등을 갖춘 제주상징타워를 건립하려 한 적이 있다. 그러고 보면 이번에 추진하려는 계획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은 그것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을 때 아름답다. 에펠탑은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운 평원의 대도시 파리에서 기준점 역할을 하기 때문에 더욱 돋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멋있는 에펠탑도 제주에 옮겨 놓으면 영락없이 흉물이 되고 말 것이다. 하늘을 찌르는 철탑은 제주의 자연과 전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한라산이 제주도이고 제주도가 한라산이라는 말이 있다.

제주도의 기준점인 한라산을 가운데 두고 어깨를 겨누고 손을 맞잡으면서 이어지는 올망졸망한 오름들의 아름다운 곡선은 그 자체가 제주도의 상징이다. 그런데 거기에 200미터가 넘는 철탑을 세우게 되면 전형적인 제주의 스카이라인이 완전히 깨지고 만다.

사실, 제주도에는 별다른 전망대가 필요 없다. 쾌청한 날 중산간의 오름에 오르면 멀리 추자도와 고흥반도를 포함한 다도해가 손에 잡힐 듯 보이고, 날씨가 워낙 좋은 날엔 한라산 정상에서 광주 무등산까지도 보인다 하지 않는가. 368개의 오름 모두가 천혜의 전망대이고, 한라산은 우리나라 최고의 전망대인 셈이다.

우리는 지금 제주의 자연이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도민과 행정당국과 환경단체가 이렇게 한 목소리로 제주 자연을 잘 지켜야 한다고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유명 사진작가와 영화감독들이 제주의 자연미를 세계에 널리 알려주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그들은 동서남북으로 바둑판처럼 산재해 있는 송전철탑과 전봇대들 때문에 제주의 아름다운 모습을 제대로 찍을 수 없다고 하소연 한다. 평화의 섬 상징타워를 지을 돈이 있으면, 이 참에 400여개의 송전철탑을 뽑아내고 송전선을 지중화해야 한다. 그래서 제주의 참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제주도의 흉물인 모든 송전철탑과 전봇대가 사라지고 송전선과 전깃줄이 땅 속으로 묻히는 날, 비로소 제주의 상징이자 천혜의 전망대인 한라산과 오름들이 제 모습을 찾게 되고, 제주의 참 모습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오페라하우스나 자유의 여신상 등과 같은 상징물을 지어야 평화의 이미지가 각인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미 우리는 많은 돈을 들여서 평화의 섬을 상징하는 제주4·3평화공원과 제주국제평화센터를 건립하고 있다. 따라서 또 다른 상징물을 짓기보다는 차라리 평화공원과 평화센터를 좀더 내실있게 완공하는 데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

모든 일에는 순서와 경중(輕重)이 있고, 모든 사물은 그것이 어울리는 자리가 있다. 이번에 추진하는 평화의 섬 상징물 건립 계획은 일의 우선순위에도 맞지 않는다. 얼핏 생각해도 하늘을 찌르는 철탑은 한라산과 오름을 잇는 곡선과 하늘과 바다를 가르는 수평선의 아름다움을 깰 것이 분명하다. 그러한 상징타워는 평화의 상징이 아니라 제주의 괴물이 될 것이다.

<윤용택 제주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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