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포럼)가난한 사람들도 신용을 누릴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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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을 없애는 첫걸음은 그들에게 자활의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올해 노벨평화상 및 서울평화상 수상자인 방글라데시의 무하마드 유누스 그라민은행 총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담보로 장기 저리 대출을 해주는 ‘마이크로 크레디트(Micro Credit)’ 운동의 창시자다. 마이크로 크레디트란 담보나 보증 부족으로 은행 등 제도권 금융기관 문턱을 넘을 수 없는 빈민층이나 영세 자영업자에게 무담보로 소액의 자금을 신용대출해 주는 제도다. 소득이 월마든, 뭘 하는 사람이건 개의치 않고 창업, 가게 운영이나 생활에 필요한 돈을 대출해주는 금융 인프라인 것이다.

“내가 배운 경제학이 무슨 도움을 줄 수 있단 말인가.” 못사는 조국에 절망하던 엘리트 경제학자인 유누스 총재는 1974년 찢어지게 가난한 마을 주민 42명에게 호주머니에 있던 27달러를 주며 “돈을 벌어 갚아라”고 했다.

‘오병이어(五餠二魚·보리떡 5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 주민들은 돈이 생기자 빌린 돈부터 갚으러 왔다. 이것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단순히 돈을 빌려주는 차원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마이크로 크레디트 운동의 시발점이었다.

유누스 총재는 1976년 그라민은행을 설립한 이래 지금까지 모두 600여 만명에게 ‘자활의 길’을 열어줬다. 그라민은행은 직원 1만 8151명, 지점 2185개를 운영하는 거대 은행으로 성장했다. 유누스 총재의 마이크로 크레디트 운동은 아프가니스탄, 카메룬 등 저개발 국가는 물론이고 미국, 캐나다, 프랑스 등 선진국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37개국으로 퍼져나가 9200만명의 빈민들이 소액 대출제도의 혜택을 받고 있다.

IMF사태로 경제대란이 발생한 우리나라는 빈곤층과 결식아동의 문제, 실직과 가족해체라는 사회적, 국가적 위기가 닥치면서 300만명의 신용불량자를 양산시켰다. 여기에 제주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아직도 2만여 명으로 추산되는 신용불량자가 은행 문턱에 가보지 못하며 제주경제에 발목을 잡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이렇다보니 먹고 살기가 어려워진 신용불량자들은 과도한 채무에 짓눌리면서 줄을 지어 법원으로 향하고 있다. 올들어 8월말까지 제주지역의 개인채무자 회생제도 신청자는 752명으로 이미 지난 한해 신청자 수(749명)를 넘어섰다. 이런 추세라면 연말까지 1000명을 웃돌 것으로 보인다. 개인파산 신청자도 8월말 현재 287명으로 지난해 수치(162명)를 초과한 상태다.

이처럼 각종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개인채무자 회생 및 파산제도 신청자가 급증하고 있는 것은 금융기관이나 신용회복위원회와 같은 사적인 채무조정으로는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신용불량자의 채무상황이 악화됐음을 의미한다. 이는 곧바로 제주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면서 지역내 빈곤층 확대로 이어져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오죽하면 생활고나 카드 빚 등에 못이겨 자살하는 사람이 날로 증가하고 있겠는가.

그렇다면 막다른 길 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빈곤층에게 삶의 희망을 안겨 줄 방안은 정말 없는 것일까. 아니다. 그 해결점은 우리가 쉽게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신용불량자로 낙인이 찍힌 가난한 사람들에게 저리의 이자율로 더 많은 신용이 제공될 수 있도록 하고, 또 이들이 빚을 갚을 수 있도록 소득을 늘리고 자산을 형성할 수 있게 하는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유누스 총재의 마이크로 크레디트 운동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우리나라도 2000년 ‘신나는 조합’을 시작으로 사회연대은행, 아름다운 재단 등이 마이크로 크레디트를 시행하고 있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이지만 가능성이 보인다. 신나는 조합의 대출금 회수율이 92%에 이르고 사회연대은행을 통해 창업에 성공하는 사람이 매년 크게 늘고 있다. 때맞춰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마이크로 크레디트 활성화를 위해 휴면예금 활용 등 다각적인 방안을 강구할 것을 재정경제부 등에 지시했다.

따라서 제주특별자치도 등 정책당국은 삶의 의지는 있지만 재활자금이 막막한 이들을 건강한 경제인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제주 마이크로 크레디트 기관’ 설립을 적극 검토하고 추진할 필요가 있다. 유누스 총재가 말한 것처럼 ‘신용은 가난한 사람들도 마땅히 누려할 인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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