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시대의 넋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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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네이터’, ‘블레이드 러너’, ‘공각기동대’, ‘로보캅’, ‘스타워즈’, ‘홍콩마스크’, ‘에이리언 4’, ‘바이센터니얼 맨’, ‘A. I’ 등 그 동안 적잖이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에는 안드로이드가 등장한다. 단순한 로봇이나 사이보그가 아니라, 인간의 감성에 가장 근접하는 기계가 등장하는 것이다. 영화니까, 공상이니까 하고 치부해 버리기엔 어딘가 섬뜩한 면이 있다. 지난날 한낱 공상과학에 지나지 않던 일들이 현실로 구현되는 세상에 살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런 변화의 이면에는 디지털(digital)이 존재한다. 사실 디지털은 우리 생활에 헤아릴 수조차 없는 편이를 제공하고 있다. 그 신속성과 편이성은 경제논리와 부합하여 상당수 현대인들에게 최상의 가치이자 목적이 되어가고 있다. 아날로그(analog)라고 하면 공연히 낙후되고 경쟁력이 없는 것을 대변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이다. 의젓이 서가를 장식하던 부피가 큰 백과사전은 한 장의 CD 속에 쏙 들어가 버리고, 전달할 사연은 핸드폰이나 이메일을 이용해서 간단히 해결하면 된다. 어디 그뿐이랴. 공부하다가 의문이 생기면 애써 책을 뒤지거나 사전을 찾기에 앞서 ‘정보의 바다’라고 일컬어지는 인터넷을 먼저 검색한다. 심지어 직장에서 어쩌다 컴퓨터가 다운되기라도 하면 모두들 넋이 나간 사람들처럼 멍하니 일손을 놓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만큼 디지털은 이제 우리 삶의 심장부에 닿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 편이와 호사를 탐하고 누리면서도 무언가 중요한 물건을 잃어버린 것 같은 허전함이 마음 한편에 자리함은 무슨 까닭일까? 필자 또한 범골(凡骨)이기에 쉽고 편하고 달콤한 것을 추구한다. 그것이 이제 한 버릇이 되어 애써 땀 흘려 결실을 맺는 기쁨을 망각해 가기 때문이리라. 그러면서도 필자는 종종 디지털보다 아날로그가 더 좋다는 생각을 한다. 조금 느리고 불편하기는 하지만 우리 삶에 때로는 이런 요소도 필요하다고 본다. 정형화된 이메일보다 쓰고 지운 흔적이 드러나는 한 통의 편지가, 핸드폰으로 연락하기보다 직접 걸음을 재촉하여 친구 집을 방문하는 일이 한결 따스하고 정겹게 느껴지는 것이다. 겨울 햇살 번지는 망각의 강을 거슬러 추억의 편린 붙잡고 아날로그의 향수에 젖는다.

<강종호 제주서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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