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호의 난과 범섬전투 '산과 들에 시체로 덮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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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족이 세운 원나라는 고려를 간접 지배한 것과 달리 제주에는 1275년 탐라총관부를 설치하고, 목호를 파견하는 등 직접 지배를 했다.

1368년 원나라는 수도를 명나라에게 빼앗기면서 사실상 몰락했다. 하지만 제주는 여전히 목호 세력이 건재했고 이들의 기세에 눌려 고려 정부는 명나라에 바칠 말을 갖고 가지 못했다.

목호들은 자신의 황제인 쿠빌라이가 기른 말을 내 줄 수 없다고 버티자 공민왕은 1374년 최영을 총사령관으로 하는 군사 2만5605명과 전함 314척으로 구성된 출정군을 보냈다.

목호 세력도 기병 3000여 명과 수많은 보병을 거느리고 맞선 가운데 명월포로 상륙한 고려군과 목호군은 새별오름에서 결전을 벌였다.

제주판관 하담(1417~1420)은 당시 상황에 대해 ‘칼과 방패가 바다를 뒤덮고 간과 뇌는 땅을 가렸으니 말하면 목이 멘다’는 기록을 남기는 등 산과 들에 시체가 즐비할 정도로 참혹한 전투가 치러졌다.

한 달 동안 밤낮으로 치열하게 전개된 전투에서 밀린 목호군 수뇌부는 범섬으로 도망쳤다.

최영 장군은 줄사다리를 놓아 군사를 섬에 상륙시키자 목호군 수뇌부인 초고독불화와 관음보는 벼랑에서 몸을 던져 자살하고, 석질리필사는 항복했다.

범섬전투를 끝으로 목호세력에 의한 원나라 지배에 의해 다스려졌던 제주는 100년 만에 몽골과의 사슬을 끊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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