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차례 폐교의 아픔 딛고 문화예술공간으로 재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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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워야 산다'주민 교육열로 1946년 개교...2004년 자연사랑미술관으로 활용
   

1946년 9월에 문을 열어 4.3사건으로 학교가 전소되고 초대 교장이 순직하는 등 수 많은 굴곡을 극복하며 2001년 문을 닫을 때까지 40회 졸업에 걸쳐 1384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가시초등학교.

 

현재 가시초등학교 자리는 제주의 오름 풍경과 야생화 사진 전시 및 학생 인성교육을 담당하는 자연사랑(自然寫廊)미술관으로 활용되면서 배움터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가시초등학교 설립

 

8·15 광복 이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에는 초등교육기관이 없었다.

 

따라서 가시리 어린이들은 인근의 성읍국민학교나 표선국민학교를 다녀야 했다.

 

그러나 이들 학교는 가시리와 4~7㎞ 정도 떨어져 있어 하루 10㎞ 안팎의 통학 길은 어린 학생들이 감내하기는 쉽지 않았다.

 

특히 많은 비가 내리거나 한겨울 추위에는 그 어려움이 너무 커 마을주민들이 초등학교 설립을 추진했다.

 

그러나 일제의 우민화 정책으로 주민들의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광복 후 ‘배워야 살 수 있다’는 가시리 주민들의 교육 열기로 1945년 12월 5일에 가시초등학교 설립이 인가되고 이듬해 9월 1일 가시리 1924번지 마을 향사에서 드디어 문을 열게 됐다.

 

▲4·3의 아픔 속 분교로 재건

 

가시초등학교는 광복 이듬해인 1946년 12월 5일 ‘가시공립국민학교’라는 이름으로 처음 문을 열었다.

 

그러나 4·3사건으로 1948년 11월 주민들의 열의 속에 어렵게 들어선 학교시설이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이에 앞서 1948년 5월 10일에는 학교 개교일부터 초대 교장을 맡아오던 문상형 교장(일명 자봉·子奉)이 제헌국회의원 선거일에 가시리 선거관리위원장을 맡아 학교 관사에서 투표함을 지키다가 오전 5시 습격을 받아 순직했다.

 

가시초등학교는 1949년 3월 폐교되고 폐교 자리에 6개 교실을 신축해 1950년 6월 2일 화산초등학교 가시분교장으로 인가되고 같은 해 9월 1일 다시 문을 열었다.

 

▲본교 승격 후 또 폐교

 

그 후 10년간 4학년까지는 분교장에서, 5·6학년 학생들은 본교에서 교육을 받는 가운데 1960년 4월 1일 가시초등학교로 승격되고 드디어 1962년 2월 가시초등학교 첫 졸업생이 배출됐다.

 

1963년 10월 22일은 가시초등학교 학생들이 첫 수학여행에 나섰으며 이후 학생 수가 점차 늘면서 1970년에는 6학급으로 편성됐으며 1971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1981년 3월 10일 병설유치원이 개원되면서 가시초등학교는 명실상부한 아동교육의 요람으로 면모를 갖추게 됐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학생수가 점차 줄어들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학급 당 학생 수가 10명 안팎으로 줄어들어 1998년부터는 두 개 학년 이상의 어린이들이 한 교실에서 공부하는 복식수업이 불가피해졌다.

 

이에 따라 교육의 질적 문제가 제기되는 등 정상적인 교육을 위해서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게 됐다.

 

결국 비슷한 사정에 놓인 인근의 하천초등학교와 화산초등학교가 한데 묶여 농어촌현대화 시범학교로 선정되고, 2001년 2월 16일 제40회 졸업생을 마지막으로 가시초등학교는 55년 역사를 뒤로하고 문을 닫게 되고, 한마음초등학교로 통합됐다.

 

조문욱 기자 mwcho@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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