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로 산다는 것
아버지로 산다는 것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고운진 동화작가

삼복더위가 한창인 요즘 온 사회가 안전교육 열풍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겪는 우리 사회의 몸부림이라고나 할까? 나도 최근 교육청에서 실시한 수상안전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 수영을 할 줄 모르는 데도 불구하고 무조건 물로 뛰어들어 자식을 구하고는 목숨을 잃는다는 아버지 얘기를 들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라는 존재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아버지. 몇 년 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며 우리를 눈물짓게 했던 그 이름. 시골마을 느티나무 같은 크나큰 이름이지만 돌아가신 후에야 그 존재를 실감하게 된다는 아버지는 과연 누구일까? 이 시대 아버지들이 가족들에게 비춰지고 있는 모습을 생각하면 아버지라는 이름이 측은하기 그지없다.


난 매일 아침 출근길에서 두 노인을 만나면서 아버지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버거운 짐인가를 새삼 느끼고 있다.


내 일터는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인근에 있다. 일터가 가까워지면 자동차보다 주로 노인이나 바삐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 발걸음이 많이 보이는 지역이다. 도심 공동화 지역이라서 그런가? 사람들 종종걸음이 자동차를 탄 나를 어색하게 한다.      그 사람들 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두 노인. 비록 차창 밖으로 조우하는 그들이지만 가슴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모습이다. 노모(老母)를 모시고 걸어가는 아들 아니 할아버지라 해야 옳다. 노모를 꼭 붙들고 힘든 내색도 않고 사근사근 속삭이며 어르고 달랜다. 힘이 들다고 하는지 인도에 앉히기도 한다. 자식도 다 출가시키고 이젠 자신도 병들었을 법한데 노모를 모시는 일이 제 숙명이라는 듯 받아들인다.      아침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처연하다 못해 처절함까지 느끼게 된다.


 자식들은 있는지 없는지 또한 부인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다. 노모를 어르고 달래며 매일 아침 어디론가 모셔가는 모습에서 난 우리 아버지들의 황혼을 본다. 마치 처절한 가시고기를 보는 듯하다.


산란기에  암컷이  알을 낳고  떠나 버리면 알이 부화할 때 까지 지켜주고 키워주면서 제 몸은 가시처럼 말라가는 고기가 있다. 바로 가시고기다. 가시처럼 말라 갈 때도 제 살을 다 내어주고 새끼들이 둥지를 떠나야만 생을 마감한다. 그 늙은 아들에게서 제 새끼만이 아니라 제 어미까지 마지막 남은 살점을 다 내어주며 죽어가는 인간 가시고기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또 무슨 연유일까?


나에게도 아버지는 계셨지만 유년기에 돌아가셔서 그 어떤 애증(愛憎)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난 아버지로 살아오면서 업무에 바쁘다는 이유로 피곤하다는 이유로 지난 세월 어머니와 아내 자식들을 제대로 품어주지 못한 부끄러운 가시고기로 살아왔다. 그 회한(悔恨)이 늘 가슴속에 남아 내 폐부를 찌르고 있다.


내일 출근길에는 자동차에서 내려 그 아버지를 만나 볼 생각이다. 노모를 어디로 모셔 가는지 살갑게 인사라도 하며 손이라도 잡아 드려야겠다. 염소 뿔이 녹아내린다는 무더위도 힘찬 몸짓으로 파닥이는 가시고기들이 있어 오히려 청량하다. 이 더위도 곧 지나가고 가을이 올 것이다. 가을이 오면 팍팍한 삶속에서도 제 어미를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아버지들이 행복한 계절이었으면 좋겠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