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론] 용서(容恕)와 배려(配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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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우리 정치와 사회 속에 묻혀있던 단어가 바로 용서와 배려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숨가쁘게 정권에 이끌려온 우리 사회는 승리와 패배, 재벌과 노동자, 가진자와 그렇지 못한자, 부동산투기에 성공한 자와 패배한 자, 잘 사는자와 못 사는자라는 한탕주의 양극화된 구도 속에서 질시와 반목 그리고 용서하지 못하는 적개심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매사에 남이 하는 일에 대한 이해보다는 감시와 반목, 배반과 질투와 보복이 팽배했는지도 모릅니다.

이렇다보니 사회생활을 하면서 상처를 입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가까운 가족에게 상처를 입거나, 직장동료나 상사에게서 상처를 입거나, 심지어는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서도 상처를 입어왔습니다.

또 상처받은 일에 대하여 보복하려는 마음도 있게 마련입니다. 이렇게 우리 마음속에는 적지 않은 사악함이 있고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 상대방의 잘못을 끄집어내어 어떤 형태로든 처벌이나 보복하지 않고 덮어두는 그런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조용히 눈을 감고 지금 당장 내 주변에서 없어졌으면 하는 사람을 적으라면 못 적을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래서 용서는 인간의 영역이 아니고, 하느님의 영역이며 우리는 열심히 기도만 할 따름이라고까지 말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제주사회의 아름다움을 위해 용서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제주특별자치도의 시작으로 제주사회는 또다시 미완성의 사회를 맞았기 때문이며, 이 미완성의 사회를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이제 용서와 배려의 마음으로 다시 한번 일어설수 있는 계기가 있어야 하기때문입니다. 용서하는 사회를 위해서 우리는 먼저 배려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배려는 사전적인 용어로는 도와주거나 보살펴주고자 마음을 쓴다는 말입니다.

우리 현실 속에서는 남을 용서하지 못할 때 남이 못되도록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며, 남의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보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현실을 바라다보고, 남이 편할수 있도록 내가 다소 양보하고, 뒤로 물러남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수년간 제주의 정치와 사회는 용서와 배려가 없는 혼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전직 도지사와 현직도지사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이를 흥미롭게 바라보는 측이 있는가 하면 이를 도민사회가 용서와 배려를 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측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때마다 결과는 그다지 좋지 못했고, 지역사회나 도민들에게도 그다지 좋지는 못했습니다. 그 원인을 외부적인 압력과 로비 부족에서 찾는 사람들도 있다곤 하지만 그건 아닐 겁니다. 가장 무서운 적은 내부에 있다듯이, 아마 우리 자신의 마음의 이중성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배타적인 섬사람 정서, 괜당문화의 왜곡된 정신 등이 용서와 배려의 마음을 덮어버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전 한 TV퀴즈프로그램에 나온 출연자가 집에서 TV를 통해 볼때는 모든걸 다 맞출 수 있었고, “저것도 모르나?”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자신이 퀴즈프로그램에 출연해보니 정신이 멍하고 생각이 나질 않아 이제야 그 마음을 알겠다고 했듯이 우리는 그간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할 기회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남에 대한 용서는 나 자신에 대한 용서의 시작이고, 남에 대한 배려는 나 자신의 마음에 대한 배려입니다. 우리가 남을 용서하려고 노력할 때 우리의 마음에 평화가 오고, 남을 배려할 때 우리얼굴에는 평화가 보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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