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잎 나고 꽃이 피어 무성하였을 때는 온갖 새들이 다 날아와 즐겁게 지저귀며 삶을 예찬하지만 늦가을과 함께 잎 지고 열매 다 떨어지면 나무는 정적에 잠기게 된다고, 여인의 삶을 비유하는 제주 민요도 있다. 빛으로 넘치던 풍요로운 시절이 있으면 어둡고 위축되는 시기가 따른다. 억새가 피어 스러지는 것을 지켜봐도 여인의 일생을 연상하게 된다.
봄풀 우거지며 여름으로 치달을 때 물빛을 머금고 촉촉하게 억새가 피어난다. 점점 붉은 빛을 띠며 억새는 늦여름 햇살에 생기로 번득이다가, 날이 가면서 은빛으로 기운다. 차차 번쩍임을 잃고 푸석해 지다가, 겨울이 깊어지면 억새는 누렇게 말라서 바스락거리는 줄기 위에 흰 구름처럼 풀어진다. 바람을 기다리며 날아갈 채비를 하다가 산에 내린 눈도 얼었다 풀렸다 줄어드는 사이 어디에선가 봄기운이 감돌 무렵이면 억새는 자취를 감춘다.
순수하게 뛰어놀던 푸른 유년기가 지나면 붉은 치마 차려입고 시집을 가고, 차차 젊음과 생기가 시들기 시작하여, 드디어 파파 할머니가 되어 사라지는 여인도 억새와 흡사하지 않은가. 좀더 살면서 피어나는 억새를 다년간 반복해서 볼 수 있다는 차이는 있지만 커다란 주기로 보면 유사한 흐름이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여성의 역할이나 그 삶의 특색을 3단계로 구분지어 놓기도 했다. 꽃과 과일과 씨앗의 단계인데, 처음 성숙할 때는 꽃으로 살고 그 다음은 풍요로운 과일이 되다가 마지막에는 씨앗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결국 여성은 아름답고 신비한 삶을 표상하며 경험과 지혜를 간직하여서 다음 세대에게 삶을 전수하는 존재이다.
사회구조나 상업적 가치에 기초한 광고에 물들어 세뇌되고 중독 된 눈으로 보면 협소한 틀에 자신을 가두게 된다. 도처에 있는 다양한 거울을 통해 비쳐지는 삶들을 보자. 오랜만에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옛 친구의 얼굴, 숱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아름다움과 애틋함을 아로새기고 흘러간 작가들, 스타들, 열창되던 노래들, 떨어져 쌓인 묵은 잎 위로 스프링처럼 뛰는 사슴 무리, 물가를 찾아 날개를 접고 내리는 철새들, 암에 걸려 가망성 없는 치료를 받으며 병원에 누워있는 친지, 실직한 누구와 공금에 손 대고 지명수배를 받는 누구, 또 자살한 누구와 이혼한 누구, 화투와 술과 게임 등 등 중독으로 도망쳐서 현실을 팽개쳐버린 이들...한 걸음 물러서서 보면 화려한 겉포장 뒤에 숨어있는 빈약한 내용이 드러난다.
시간의 낫질을 따라 베어지는 풀처럼 무너지는 삶과 새로 돋아나는 싹들, 생명의 주기를 인정하고 작은 씨앗으로 축소되어 원점으로 돌아가는 일을 일찌감치 받아들이는 데 성숙의 열쇠가 있을지도 모른다.
<강방영 제주한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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