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귤 한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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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감귤 맛은 구수했다. 감귤 맛이 구수하다니? 의아해 하겠지만 그 감귤은 분명 구수한 내음이 났다. 흔히 감귤 맛은 새콤달콤해야겠지만 그 감귤은 노란 피부에 맺힌 땀방울이 그랬고 감귤 상자에 적힌 글자 하나하나에도 구수한 정이 묻어있었다.

지난 연말 서귀포에서 귤 농사를 짓는 수필가 오 형이 보내온 귤 한 상자에는 지금까지는 맛보지 못한 따스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어눌한 말씨만큼이나 감정 표현이 더딜 것 같은 오형이 보내온 감귤 한 상자는 이 겨울 내 마음을 따스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고맙다는 전화를 하자 특유의 어눌함으로 조금 보냈으니 맛만 보시라며…. 뒷머리를 긁는 쑥스러움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애들이 전부 서울에 살아 두 내외가 아껴 먹다가 시들어가는 게 아까워 껍질을 벗기고 갈아 주스를 만들어 유리병에 담는 아내의 뒷모습이 유난히 곱게 보였었다. 지금 냉장고에서 그 주스를 꺼내 혀끝에 놓고 새콤달콤한 맛을 음미한다.

물건을 보내기는 쉽다. 그러나 마음을 보내기는 쉽지 않다. 일주일이면 수북이 쌓이는 우편물들…. 그 중에는 유인물로 출력된 차가운 발신인과 수신인이 있는가 하면 주소와 이름까지 육필로 정성스럽게 써 보낸 우편물이 있다. 육필로 써서 보낸 우편물을 보는 마음은 따뜻하다. 고운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 녹차를 마시는 착각을 하게 된다.

책 한 권을 보내더라도 사무적인 것이 아닌 마음을 보내는 방법을 알아야겠다. 옛날 제사떡을 나눠 먹던 구수한 정은 떡 몇 개를 나누어 먹은 게 아니라 마음을 나누어 가진 게 아니었을까. 입춘 지나 물오른 감나무를 보며 문득 오형이 생각난다. 오형은 지금 무엇을 할까? 감귤 밭에 밑거름을 할까, 아니면 그 구수하면서도 짧은 수필을 쓰고 있을까, 감기가 심하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약주 한 잔 하자고 말은 하면서도 서귀포와 제주시 그 거리가 멀어서인지 내 마음이 멀어서인지 만나지 못한 지 오래다.

어느 지인이 나에게 해 준 말이 생각난다.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가장 쉬운 방법이다”

그렇다, 돈으로만 해결하려는 마음에는 병적인 이기심이 묻어 있다. 그러나 평생 모은 재산을 장학금으로 내놓은 어느 할머니의 정성은 어찌 돈 액수만으로 그 가치를 샘할 수 있을까.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주는 것, 그것이 바로 마음을 주는 법이다. 깊은 생각 없이 보낸 나의 책을 마음으로 받아준 분들이 있다. 그러고 보면 마음을 담아 보내는 것만 어려운 게 아니라 마음으로 받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고성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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