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론] 뉴제주운동과 식게집 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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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기록이라던가? 자연생태계는 물론이고, 민족이나 국가의 흥망성쇠도, 개인의 영달도 주어진 환경에 어떻게 대처하는냐에 따라서 운명을 달리했다.

인간의 태생적 개성을 단기간에 능동적 또는 수동적으로 바꾸고, 새로운 사회를 맞이하기는 쉽지 않다.

제주도 4·3 사건에 대한 인식의 변화과정이 이를 잘 설명해준다. 자연생태계의 급격한 변화도 화산의 폭발, 대홍수, 전염병의 창궐, 행성의 충돌, 기후의 급변, 핵폭발 등 가히 혁명적인 사건의 영향을 받지 않고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뉴제주운동은 작금의 주어진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는 차원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되며, 박정희 대통령 집권 당시의 새마을 운동을 상기시킨다.

새마을운동은 막강한 중앙정부의 공권력과 자금 그리고 잘 살아보자는 국민의 자발적 의지가 뒷받침 되었기에 성공했다고 본다. 그에 비해, 뉴제주운동 추진을 위한 구동력은 빈약하다. 시동은 걸렸으나,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공권력도, 자금도, 주민의 공감대도 다 부족하다. 온 도민이 참여하는 운동으로 어떻게 몰아갈 것인가?

지난달 초에 김태환 지사가 ‘뉴제주 운동’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도지사부터 확실히 달라지겠다” 고 공언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지도자가 솔선수범해서 앞장서겠다니, 거기에 덧붙여서 한마디 주문하고자 한다.

‘식게집 도지사’라는 별칭은 이제 과거의 역사 속에 묻어버립시다.

경조사 참례 여부 차원의 주문이 아니다. 경조사 참례가 도민의 의사를 수렴하고, 도정에 반영하기 위해서 이루어지는 공무의 연장이라 볼 수 있다. 또한, 도지사가 도민의 기쁨과 슬픔을 같이한다는 미덕이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도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통로가 없어서 그렇다면, 정보 통신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우리사회에서 그보다 훌륭한 통로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기쁨과 슬픔도 현장에 찾아가야만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국방의 의무 수행 차 떠난 아들이 부모상을 당해도 못 올 수 있고, 외국에 공부하러간 딸이 동생 결혼식 때 못 올 수 있으며, 고등학생이 삼촌제사에 참례하지 못할 수 있다.

그렇다고 결례가 되거나, 흠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 당면한 문제가 경조사 참례보다 가족전체에게 더 중요한 일일 수 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얼마든지 애환을 같이 할 수 있다.

경조사 참례는 특정 집단의 구성원간 상호부조의 성격을 띠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인이 연고지의 경조사를 잘못 챙기면, 선거전에 불리한 것이 제주도의 현실이다.

그러니, 경조사 치레는 도지사가 의도했던 안했던 간에 선거를 의식한 행보로 자연스레 연결된다. 경조사 참례가 지사의 득표운동이 될 수 있었으며, 많은 도민들이 그렇게 받아들였다. 도민의식의 문제인데, 왜, 정치인인 도지사를 나무라는가 라고 반문할 수도 있으나, 이를 풀어갈 수 있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자는 누구보다도 도지사이기 때문이다.

도지사의 24시간은 대학총장의 24시간, 대통령의 24시간과 마찬가지로 공무집행시간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부지런한 도지사가 친인척의 경조사도 챙기지 못할 정도로 공무수행에 바빴으면 좋겠다. 식게집 도지사보다도 더 좋은 애칭을 받는 지도자로 회자되기를 기대한다.

비록 자신을 키워준 토양일지라도, 제주도의 미래를 위해서, 번데기가 허물을 벗어버리고 나비가 되어 창공을 날듯이, 식게집 도지사를 탈피하고, 한 단계 더 도약하기위하여 앞장서서 희생하는 지도자의 의식변화가 국제자유도시를 지향하는 뉴제주운동에 커다란 구동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믿는다.<고영환 제주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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