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의 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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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영<수필가>

방향 감각이 둔하고, 돈 계산이 안 되고, 영어를 못하는 악조건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파리 여행을 결심했다. 이번엔 단체투어가 아닌 개인으로 가보고 싶었다.

여행사에 호텔을 부탁했다. 안전하고 쇼핑하기에 편리하고, 근처에 카페가 있으면 더욱 좋겠다고. 게다가 고풍스런 파리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라는 주문을 덧붙였다. 여행사 쪽에서 소개해준 ‘돈삐샤리’ 호텔은 18세기 건물인데 고풍스러움 그 자체였다.

15년만의 파리는 변한 게 없었다. 오래 된 건물도 그대로 있었다. 밤이 되어 불이 켜지면 그 건물의 예스러운 모습은 더욱 아름다움을 발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변하는 환경에 익숙해진 나는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 완고함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졌다. 거리에 사용할 수 있는 색깔이 정해져 있어서 네온이 번쩍이지는 않았지만 감탄이 나올 만큼 세련된 거리도 여전했다.

그러나 파리에 온 기쁨도 잠시, 비극은 너무도 빨리 시작되었다. 호텔 방 문이 열리지 않았다. 열쇠구멍에 열쇠를 넣었는데 전혀 움직이질 않는 게 아닌가. 미국식 호텔처럼 카드를 넣고 여는 합리적인 문이 아니었다. 20분 정도 씨름을 했지만 별 수 없어 직원을 불렀다. 그는 무엇이라고 프랑스어로 속삭였다. 요령을 설명하는 모양인데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나는 알아들은 척 하고 그를 돌려보냈다. 다시 문을 열려고 애써 봤지만 허사였다. 밀어도 당겨도 두들겨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 곳에서 일주일 머무는 동안 매일 직원을 부를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나는 코트를 벗고, 드디어 재킷을 벗고, 도중에 초콜릿을 먹고 에너지 보충을 시킨 뒤, 무려 한 시간 격투 끝에 요령을 터득했다. 이미 그 때는 지쳐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파리까지 와서 내가 얼마나 둔한 여자인가 하는 걸 확인하는 건 우울한 일이었다.

그 문은 너무도 간단히 열리는 문이었다.

파리 여행의 첫 날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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