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 노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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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 언덕 위에 초가 삼간 그립습니다/ 자주 고름 입에 물고 눈물 흘리며/ 이별가를 불러 주던 못 잊을 사람아’( ‘찔레꽃’ 1절)

김영일(1914~1984)이 작사하고 김교성(1901~1960)이 곡을 붙인 이 노래는 1941년 제주출신 가수 백난아(1927~1992)가 발표했다. 한림읍 명월리에서 태어난 가수 백난아는 일찍이 고향을 떠나 태평양레코드와 돔보레코드, 경성방송국 등의 전속 가수로 활동하며 ‘찔레꽃’을 비롯 ‘망향초 사랑’ ‘낭낭 18세’ ‘직녀성’ ‘간도선’ 등을 불렀다. 신인가수선발대회에서 작곡가 김교성에 의해 진방남, 박재홍 등과 함께 발굴된 백난아는 남인수, 백년설, 장세정과 해방전 한국 트로트 가수의 계보를 잇는다.

‘찔레꽃’ ‘간도선’에서 보듯 망향의 안타까움과 이별, 유랑의 정서 등 나라를 빼앗긴 설움을 잘 노래하고 있다. 가수 이미자가 10살 무렵 부산 피난시절 국제시장 앞 동아극장에서 가진 백난아의 공연을 보고 가수의 꿈을 품었다고 술회할 만큼 백난아는 한국 가요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북제주문화원에서 유적지 표석문 사업의 일환으로 고향 명월리에 ‘찔레꽃’ 노래비를 세운다고 한다.

▲제주에는 ‘서귀포 칠십리’ 노래비가 서귀포 외돌개에 세워져 있다. 조명암의 가사에 박시춘이 작곡하고 남인수가 불러 1938년에 발표한 가요.

‘바닷물이 철석철석 파도치는 서귀포/ 진주캐던 아가씨는 어디로 갔나/ 희바람도 그리워라 뱃노래도 그리워/ 서귀포 칠십리에 황혼이 온다’( ‘서귀포 칠십리’ 1절)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의 선풍을 타고 전국에서 불려졌던 이 노래는 1948년 작사자 조명암이 월북한 후 금지곡이 됐다. 그러나 이 노래가 없어질 것을 염려한 음악인들의 개사작업으로 근근히 이어지다 지난 1997년 외돌개에 노래비가 세워지면서 서귀포 시민들의 품에 영원히 안겼다.

▲특히 이번에 노래비가 건립될 ‘찔레꽃’은 제주도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제주가 낳은 가수가 불렀을 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고향을 등지고 방황할 때 목놓아 부르며 애수를 달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이제 ‘서귀포 칠십리’에 이어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절절했던 노래비가 하나 더 보태진다. 가수의 고향 명월대에 찔레꽃이 가득 피어 붉은 열매와 함께 그 향기가 널리 퍼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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