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을 기다리는 시골식당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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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애덕 사회복지학 박사/사회복지법인 청수 이사장/논설위원
복지정책수급을 중심으로 일하는 사회복지현장은 어떻게 보면 생산성과 무관해보일 수 있으며 치열한 삶의 현장과 다르다. 그 와중에 흙과 땀 냄새나는 시골식당의 생산적 활기를 경험하는 것은 매우 신나고 즐거운 일이다.

수눌어서 일하는 일꾼들과 함께 한 농민들은 식탁을 가로 질러 이웃 주민들과 콜라비, 마늘, 양배추, 무 등 어떤 것을 몇 평이나 재배했는지 활기차게 정보를 공유한다. 눈치가 빠른 농민은 가능하면 남들이 재배하지 않는 작물을 선택하는 지혜를 발휘하기도 한다.

식당 안에서 수확의 희망과 활기찬 생산적 대화를 어깨 너머로 들으면서도 풍성한 제주가을을 보게 되어 매우 기쁘다고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금년 농사는 너무 풍년이 들어 망할 것이라고 껄껄 웃는다. 아주 잘해야 갈아엎지 않을 것이라 하는 것이 농민들의 전망이다. 농민들이 이런 전망을 할 때 농업정책은 어디로 실종되고 있는가? 농업정책은 언제까지 농민들과 유리된 채 평행선을 가야할 것인가? 농민들은 농업정책에 대해 기대하기보다 원시 농경 사회와 다를 바 없이 하늘에 의지한다.

밭을 갈아엎지 않으면 다행이라면서 해학과 유머로 농사일의 고달픔을 웃어넘기면서도 절망을 기다리는 대화 끝에 “영 고르민 미안한 이야기주마는 태풍이 와사 우리가 삽니다게. 그것도 아주 큰 메가톤급 태풍이 와사 우리가 살 수 이서마씨. 하늘도 무심허여. 요즘은 태풍을 안 보냄쑤게”라면서 표정이 굳어진다.

또 한편 이 식탁 저 식탁에서 농업 정책과 농협과 조합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거대한 유통망과 냉장 창고를 가진 대형 유통업체들이 많이 있는데 정부가 관리하는 대형 창고나 대형 유통업체는 왜 없는 것일까? 농작물이 과잉 생산될 경우를 대비해 안정된 소득을 보장할 수 있는 농산물수급정책이 없는 것은 아닐 텐데 왜 매번 지친 농심을 비겨가는 것일까?

계획경제라면 작물과 생산 공급량 통제 조절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가에서 정부나 농협 조직이 생산량을 통제하고 판로를 조절한다면 개인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것일까? FTA만으로도 충분한 위협으로 다가옴을 느끼는 농민들이 제도와 정책보다 21세기에도 하늘만 바라보며 태풍을 기다리는 것은 매우 부조리한 상황인 듯하다.

자연재해를 대비해 농작물재해보험이 있다. 영리한 농민들은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해 재해를 당할 시에 보험이라도 수령하는 지혜를 발휘하지만, 정보가 없는 농민들은 대책없이 재해의 희생물이 된다. 농작물재해보험은 농민들에게 자연재해를 대비한 소극적인 안정대책 중 하나인 것처럼 보인다. 소극적이기는 하지만, 농작물재해보험의 장·단점에 대한 농민대상교육이 필요하고 이런 보험가입을 위한 정책적 지원이 혹 농민의 소득정책에 조금 보탬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뿐만 아니라 농산물 과잉생산을 대비할 수 있는 보험 장치인 ‘과잉생산대비보험’을 만들고 이에 대해 보험회사나 금융기관 그리고 정부기관이 연계하여 농민의 소득안정대책을 만드는 것이 흙과 땀에 범벅이 된 농심을 달래는 하나의 방법이 되지 않을까 하는 몽상에 잠겨본다.

올 겨울에도 밭을 갈아 엎어야할 지 모르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보겠다는 애타는 심정으로 밭작물이 마르지 않도록 물을 대면서도 아이러니컬하게도 제주농심은 오늘도 메가톤급 태풍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한편 식당의 활기찬 대화 속에서 아픈 농심을 읽어내면서 농민이 메가톤급 태풍이 아니라 농심에서 유리되거나 빗나가지 않는 농업정책을 기대할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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