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태민안(國泰民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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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송(宋)나라 2대 황제인 태종(太宗)을 섬겼던 재상 여몽정(呂蒙正)이 처음으로 부재상으로 기용되었을 때, 그가 조회에 참석하려고 하는데 도열한 군신들 속에서 “저렇게 새파란 애송이가 부재상이라니…”라며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여몽정은 못 들은 척 하고 그대로 지나갔다.

화가 난 그의 동료가 “그 자의 관직명이라도 알아보아야겠다”고 하자 여몽정은 오히려 그를 말렸다. 동료는 퇴근을 한 후에도 분해했으며 그 이름을 확인하지 못한 것이 끝내 유감스럽다는 투였다. 그러자 여몽정이 말했다. “아니네. 모르는 편이 나아. 그 자의 이름을 알게 되면 나도 인간인지라 그를 미워하게 될걸세. 그 이름을 알지 못했다고 해서 나에게 손해가 될 것이야 없지 않은가.”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사람들은 모두 그의 넓은 아량에 감탄했다.

또한 송나라 수도를 흐르는 변하의 수운업자가 관물을 횡령했다는 밀고가 들어오자 태종은 “어느 세상에도 그런 자는 있게 마련이야. 쥐구멍을 모두 막아버리기란 어려운 일인 것과 마찬가지이지. 사공들이 다소 횡령했다 하더라도 전체에 큰 영향이 없는 이상 방치해 두도록…물자가 거의 운반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라고 하자 여몽정도 이에 찬성하며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고 했나이다. 사람도 너무 잔소리를 하면 도리어 일을 잘 해내지 못하는 수가 있습니다. 군자는 소인배들이 하는 짓을 눈감아 주는 법입니다. 넓은 금도(襟度)로 대처하는 일이야말로 모든 일을 풀어 나가는 첩경이지요. 이번 사건도 주의는 하되 자질구레한 과오는 눈감아 주시는 것이 좋을 듯하옵니다.”
송사(宋史)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신정부가 출범한다. 혹자는 그가 이삼십대의 전폭적인 지지로 당선되었다고 주장하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그 주된 원인이 뭇 철새 정치인들처럼 권력의 향방에 따라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하는 비겁함이 없었고 옳다고 하는 일에 소신껏 살아왔고 약자의 편에 서서 짓밟힌 인권을 되찾아 주고자 노력했던 인권 변호사 출신이었기 때문이리라 본다.

혹자는 그의 정치적 경륜이 일천함을 거론하는 데 알다시피 중국 초(楚)나라의 귀족 출신인 항우(項羽)가 시골 농부의 아들이자 집안이나 동네에서조차 시큰둥해 했던 건달 출신인 한(漢)고조 유방(劉邦)보다 머리나 경륜이 부족해서 천하제패를 목전에 두고 패했을까…. 통치자는 백성에게 무섭게 군림하지 말고 따뜻한 가슴을 지니고 국민의 입장에 서서 정치를 행해야만이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이룰 수 있음을 가슴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중국의 요순(堯舜) 임금도 그리하지 않았는가. 총명한 용장이었지만 투항한 진군(秦軍) 20만명을 생매장해버린 항우의 독선과 잔혹함이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훌륭한 참모들을 덕으로 포용하며 고언을 귀담아들었던 유방의 덕치(德治)에 패했다는 사실은 차후 정계의 귀감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핵을 빌미로 한 노회(老獪)한 북한의 외교에 끌려다니지만 말고 우리 남한측도 노회하게 맞서서 합일점을 도출하게 되는 시점에 자주통일 문제도 제대로 도출되지 않을까 싶다. 향후 정부에 당부한다. 외교의 난맥상을 추스르기 위해 외국 주재 한국대사는 해당국 사정에 밝고 현지어에 능통한 제대로된 정통 외교관을 포진하라고…. 손자가 일찍이 말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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