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 공화국(削髮 共和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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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사회성 측면에서 보면 ‘삭발(削髮)’은 ‘스님’과 동의어다.

‘머리를 깎는다’라고 할 때, 사람들은 스님이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불가에서는 머리카락을 번뇌의 표징으로 보았다. 마음속의 번뇌가 머리카락으로 드러난다고 생각해 이를 삭발함으로서 잡념을 없애는 무소유 정신을 일깨웠다. 그러면 머리를 깎으면 번뇌가 사라지는가? 그건 아니다. 이는 일종의 비유일 뿐이다.

깎아도 깎아도 자라는 머리카락은 끊임없이 솟아나는 인간의 번뇌와 닮았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머리카락을 무명초(無名草)라고 부른다.

▲삭발은 불가에서만 했던 것이 아니다.

가톨릭에서도 사제 서품을 받을 때 삭발례를 하는 오랜 전통이 있었다.

1960년대에 전례 개혁으로 이 관습이 없어졌지만, 아직도 많은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이 삭발을 하고 수도생활을 한다. 기독교를 세계화시킨 사도 바울도 삭발을 했다고 한다.

이런 삭발이 요 근래 대유행이다.

지구촌 저편에서 팝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삭발을 하고, 이천의 하이닉스 공장 증설문제로 삭발하는가 하면 사학법 재개정을 위해 한나라당 의원 3인이 또 삭발을 했다.

뒤이어 개신교 목사들까지도 삭발행렬에 동참을 했다. 심지어 은행 직원들도 낙하산 인사를 저지한다며 삭발을 하고 있으니 온 나라가 ‘삭발 공화국’이 되는 느낌이다.

제주도에서도 한-미 FTA(자유무역협정)과 관련해 농업지도자들이 집단 삭발을 하더니 위미1리 해군기지 반대집회에서도 주민대표 6명이 삭발을 했다. 삭발이 수행수단이 아니라 저항수단화하고 있다.

▲큰 스님이 머리를 깎는 어린 스님들에게 꼭 하시는 말씀 중에 하나가 ‘일일삼마(一日三摩) 하라’는 말이다.

이 말은 앞으로 깎은 머리를 ‘하루에 세 번씩 만져보라’는 뜻이다. 이는 머리를 깎은 스님으로서 본분을 잊지 말고 항상 정진하라는 의미다.

며칠 전 한-미 FTA로 삭발을 한 친구를 만났다.

우울해 보이는 그에게 “스님 안녕 하십니까” 했더니 그제야 얼굴을 활짝 편다.

그러고 보니 머리를 깎은 그 얼굴은 그 옛날 초등학교 때 그 모습 그대로 아닌가. 그래, 세상이 험난해도 ‘일일삼마’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어려울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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