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가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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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대.

전쟁이라는 감옥에 갇혀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던 영혼들이 있었습니다.

누구든 황망하지 않았겠습니까만 1926년 함흥 태생으로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한 변훈이 제주에 피난을 옵니다.

피난 후 주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 부영사 등을 역임하며 외교관으로 활동했지만 지금은 작곡가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쇠주를 마실 때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짝짝 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 질지라도’라는 가곡 ‘명태’도 그의 곡입니다.

▲1953년 참전 후 제주 농고에서 영어와 음악을 가르치던 그는 ‘떠나가는 배’를 작곡했습니다.

그에게 배는 통상적으로 뭍으로 오가던 연락선 이상이었지요.

매일 한번씩 피난민을 태운 배가 부산에서 제주부두에 닿으면 눈물의 사연들을 속속 풀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떠나가는 배’의 가사는 당시 변훈과 같은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양중해 시인이 썼습니다.

당시 작사자에게는 시인 친구가 있었는데 기혼자로 제주에 피난 와 살면서 한 처녀와 연애를 했답니다.

이 사실을 알아차린 그녀의 부모가 찾아와 강제로 배에 태워 부산으로 데려 갔다고 합니다. 부둣가에 남아 사랑하는 연인을 보내며 이별을 서러워 한 친구의 별리 장면을 읊었습니다.

그래서 ‘떠나가는 배’가 탄생했지요.

▲‘저 푸른 물결 외치는 거센바다로 떠나는 배/ 내 영원히 잊지 못할 님 실은 저 배는 야속하리/ 날 바닷가에 홀로 남겨두고 기어이 가고야 마느냐’

기어이 가고야 만 비련의 연인들의 사연은 이제 먼 회한으로 남았습니다.

그러나 작사자는 “부두에서의 이별 장면은 배가 수평선에서 점으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는 것이었는데, 그 심정이 참으로 아득하고 절실했다”고 훗날 당시의 심정을 털어 놓았습니다.

지난 4일 이 곡을 쓴 양중해 시인이 타계했습니다. 이 곡을 작곡한 변훈도 지난 2000년 작고했습니다.

비록 이들은 떠났지만 ‘떠나가는 배’는 영원할 것입니다. 부둣가에서 머리칼 나부키며 손을 저어 보내는 섬의 숙명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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