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론]양자택일의 가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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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정답이 딱 하나만 있어 보인다. 그렇지 않다. 단지 생각을 못했을 뿐이다. 정답도 세월 따라 자주 바뀐다. 비행기는 어디에 내려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일반적인 대답은 “땅위에, 활주로에, 안전한 곳에, 마을이 없는 넓고 평평한 땅에 내린다.”이다.

미국의 군수업체 록히드마틴이 무인 비행기 가마우지를 개발 중이다. 이 비행기는 잠수함에서 미사일처럼 하늘로 쏘아 올려진다. 공중에서 날개를 펴고 주변 800km 일대를 정찰한다. 임무를 마친 후 바다로 뛰어든다. 잠수함에서 가마우지 비행기를 수거한다. 가마우지 비행기는 땅에서 이착륙하지 않는다.

단 하나의 정답이 있다는 생각은 문제해결을 막는 장애물이다.

선거를 치를 때면 “너는 누구 편이냐? 너의 색깔을 밝혀라!”는 말을 듣는다. 특별히 누구를 지지하는 것도 반대하는 것도 아닌데 누구를 택해야 하나 고민에 빠진다. 수십 년 동안 문제의 정답을 알아맞히도록 훈련이 되었기에 끙끙대며 문제를 푼다.

정녕 나의 색깔은 빨강인가 파랑인가. 하지만 좀 더 생각하면 다른 답이 있다. 내 색깔은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색인데 어떤 색을 원하느냐고 묻게 된다. 비단 외무지개만 있나. 그렇지 않다. 쌍무지개가 있다. 밤하늘에 달은 달무리 무지개를 만든다. 백색광의 빛은 그 자체가 무지개이다.

단 하나의 색을 밝히라는 요구는 대답하기 어렵고 투쟁적이다.

환경개발과 보존, 친미와 반미, 진보와 보수 어느 한 쪽을 택해야 하나. 양쪽 측면이 모두 장단점을 갖고 있다. 작가 김훈은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에서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어느 편인지를 분명히 밝히라는 정치인의 말은 공허한 말장난이라고 했다. 극단적인 신념을 가진 이들은 직선의 양 끝에 서지 않고 원을 그리며 서로 이웃해 있다. 극단적 보수주의는 파시즘이 되고, 급진적 자유주의는 공산주의가 된다.

히틀러와 스탈린은 정치적 이념의 양극단에 서 있었지만 두 사람 모두 전체주의 정부를 수립해서 수백만 명을 살해했다.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포기하지 않고 추구하는 것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자신의 신념을 일방적으로 타인에게 강요한다면 그것은 폭력이 되고 만다.

모든 인간은 다른 사람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할 권리를 갖는다. 다른 사람을 억압하고 강요할 권리는 아무도 없다.

성경에는 예수를 심판한 로마의 총독 본디오 빌라도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당시 풍습에는 명절에 백성들의 소원대로 죄수 하나를 방면하였다. 빌라도는 ‘바라바’라는 죄수와 예수 둘 중에 누구를 풀어주느냐고 사람들에게 물었다. 사람들은 예수가 아닌 바라바를 택했다. 빌라도는 민란이 일어날까 두려웠다. 그가 물에 손을 씻으며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라고 말한다. 손을 씻는다고 빌라도의 죄가 없어지진 않는다.

제주 해군기지와 부안 방사능 폐기장 건설은 모두 몇 년을 끌며 엄청난 주민 갈등을 증폭시켰다. 가능한 시나리오에 따른 대안개발을 완성하지 않고 주민의견을 구했다.

여론의 추이를 보아가며 주민이 원하는 곳으로 결정한다. 부안 방사능 폐기장은 경주로 갔다. 이번에는 경주 어느 곳을 택할 것인지 새로운 주민갈등이 생겼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최적 후보지가 계속 바뀌었다.

여론조사를 통해 사람들의 의견을 알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의사결정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암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의 65%가 암에 걸리면 자신이 직접 치료법을 택하겠다고 응답했다. 실제로 암에 걸린 사람인 경우에는 응답자의 88%가 선택을 안 한다고 대답했다. 식물인간이 된 환자를 안락사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의사가 환자가족에게 묻는다면 이는 너무나도 가혹하다.

<현정석 제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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