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론] 아름다움의 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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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들이 스러지는 자리에 빛나는 새 잎들이 대신 일어서서 아직도 눈부신 계절은 이어지고 있다. 조용한 시간이면 하늘을 울리며 아침을 열어 놓는 제주 휘파람새 소리도 들린다. 해맑은 그 울림에는 깊은 산 짙어지는 초록 숲에 흐르는 물과 산골짜기에 지나가는 바람이 담겨 있는 듯 하다. 깊고 어두운 우물에서 금방 길어 올린 차고도 감미로운 물 맛 같은 소리라 할까. 그 지저귐은 듣는 이의 마음을 씻어서 간절함을 일깨우고 잊혀진 기억 속의 풍경을 환하게 밝히기도 한다. 한없이 번져가는 청아한 소리에 한 순간 산의 품에 안기고 물의 길로 이끌려 간 듯 평안하고 하면서 그 여운이 길게 남는다.

요즘 같은 날씨에 집안에만 있는 것은 억울한 노릇이다. 어쩌다 가까운 오름에라도 가서 코에 가슴에 바람을 넣어 볼 일이다. 오름에 부는 바람은 그 속에 그리움의 씨앗을 숨겨서 키우고 온 천지에 나르는 것 같다. 바람을 타고 날아간 들꽃 씨앗들은 솜털 줄기를 펴서 별처럼 일어난다.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난 크고 작은 나비와 나방들이 다양한 색채의 날개를 펄럭이며 바람을 탄다. 그들을 따르다 보면 발 디딜 곳 모를 만큼 밟는 곳마다 풀밭은 생명의 활동으로 분주하다. 개미들이 회의를 소집하는 듯 돌아다니는가 하면 금빛 벌들도 바쁘다. 어쩌다 축축한 흙을 믿고 모습을 드러낸 지내도 붉은 머리와 어금니에 어울리게 노르스름한 색의 수많은 발을 조화롭게 움직여 마디마디로 이뤄진 검고 통통한 몸으로 물 흐르듯 지나간다. 구경하는 비용도 요구하지 않으면서 이들은 한없는 경외감으로 보는 이에게 생명감을 되돌려주곤 한다.

가까운 수목원에만 가 봐도 풍요로운 잔치가 벌어지고 있다. 더욱 싱그러워진 나무들이 저 마다 독특한 색과 향기로 생기를 내뿜고 있으며, 산비둘기, 직박구리, 방울새, 동박새, 큰오색딱따구리, 까치, 까마귀 등 크고 작은 다양한 새들이 지저귀고 날아다닌다. 힘차게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는 그들의 민첩한 동작을 보노라면 시간을 잊게 된다. 그들의 호기심 넘치는 표정과 생동하는 노래는 늙을 줄 모르는 자연계의 영원한 젊음을 나타내는 듯 하다. 어쩌다 찬란한 색깔의 털빛에 흰목도리를 두른 장끼를 만나는 수도 있고 운이 좋으면 갈색의 노루와 눈이 마주치는 수도 있다. 꿩은 모른 채 하면 그냥 의젓하게 걸어서 제 갈 길을 가기도 하지만 한 박자 쯤 뒤늦게 온 산이 찌렁찌렁 울리게 꿩꿩 소리를 지르며 퍼드득 하고 날기도 한다. 노루도 신비하긴 마찬가지이다. 나무 사이 그늘에 조용히 서있으면 전혀 동물 같지 않고 무슨 꽃나무인 듯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갑자기 뛰기라도 할라치면 그야말로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그들의 탄력을 무엇에 비할까. 나뭇잎을 우수수 흔들며 숲을 가로지르는 바람 같다고나 할까.

사실 우리 자신도 그 향연 속에 초대받았으며 그들 못지않게 기막히고 절묘한 자연의 또 다른 작품일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아름다운 존재로 살아가면서 즐겁지도 않고 기쁘지 않으면 어딘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물론 슬프고 괴롭고 아프고 암담한 일들은 너무나 자주 수시로 벌어진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우리는 행복하게 살도록 태어난 것이라고 믿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먼저 우리 자신을 이해하고 소중히 여기면서 자긍심을 지니게 되면 아끼고 돌보는 마음이 다른 생명체들에게도 확산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런 마음자세는 주변 사람에게서도 좋은 자질을 끌어내면서 기쁨을 더 키우는 기본이 되지 않을까. 그러한 삶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현실은 너무 큰 욕심을 부리다가 오히려 잘 사는 길에서 너무 멀어져 버린 결과인지도 모른다.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상업주위에 우리가 오염되고 그 술책에 암암리에 조작되면서 쓸데없는 것을 바라고 엉뚱한 소원을 빌면서 삶을 왜곡시키고 있지 않은지 살펴 볼 일이다. 특히 요즘 들어서 자신의 외모를 스스로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들과 빗나간 욕심에 들떠 온 세상을 제압하려는 사람들 숫자가 점점 늘어가는 추세는 기상 이변과 마찬가지로 총체적으로 불균형한 삶의 결과가 아닐까.

아름답다고 예찬을 받았으며 스스로 아름답게 생애를 살았던 여인, 누구나 알만한 옛 스타 오드리 햅번은 자신의 아들에게 쓴 편지 중에서 다음처럼 말했고 한다.

“아름다운 입술을 가지고 싶으면 친절한 말을 하라. 사랑스러운 눈을 가지고 싶으면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봐라.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으면 너의 음식을 배고픈 사람과 나누어라.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갖고 싶으면 하루에 한번 어린애가 너의 머리를 쓰다듬게 하라.

아름다운 자세를 갖고 싶으면 결코 너 혼자 걷고 있지 않음을 명심하라.

네 나이가 더 들면 손이 두개라는 걸 발견하게 된다. 한 손은 너 자신을 돕는 손이고

다른 한손은 다른 사람을 돕는 손이다.“

삶을 아름답게 하는 재료들은 너무나 많다. 그러나 이 세상이 무궁무진한 아름다움의 창고이며 줄거리로 가득 찬 책과 같다 해도 찾으려 하지 않고 읽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에게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강방영 제주한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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