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론] 감귤! 뒤집어 생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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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에서 감귤에 대한 협상이 불리하게 이루어진 것은 제주도민 전체에 음으로 양으로 영향을 미치게 될 중요한 사안이다. 이는 협상대표가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른 항목에 비해서 국가 전체로 볼 때 덜 중요했기 때문이던지 아니면 우리가 그 중요성을 충분히 납득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떼쓰기와 설득하기’를 구분하지 못한다. 내가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떼쓰기’이고 상대방이 그것을 내게 주어야 할 이유를 말하는 것이 ‘설득하기’인데 우리는 흔히 설득하러 가서 떼만 쓰고 온다. 내 말만 하고 오는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협상대표를 찾아가도 협상대표가 납득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따라서 또다시 떼를 쓸 이유는 없다. 그것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입증되었으니까.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윽박질러서 원하는 것을 얻어낼 만큼 우리가 강하지 않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세상이 나의 절박함에 공감하고 작은 손해라도 감수하면서 나를 도와줄 것을 기대할 수는 없으니까.

지금 감귤에 대한 제주도민의 정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좌절하거나 격분하여 행동하는 것이 어떤 경우에든 도움이 될 수가 없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대응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고통스럽더라도 현실을 직시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과연 귤과 관련해서 제주도민 외의 사람들이 제주도민을 어떻게 생각할까를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가끔 집사람을 따라 수퍼마켓에 가보면 비싼 과일값에 혀를 내두르는 경우가 있다. 우리나라는 과일값이 참 비싸다. 어쩌면 농업과 관련이 없는 구매자의 입장에서는 농업이야 흥하던 망하던 일단 싼값에 좋은 것을 먹고 싶을 것이다.

이들이 제주도민을 살리기 위해서 귤을 비싸게 먹어줘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런식으로 따진다면 쌀값도 올리고 석탄도 국내산 저질 무연탄 쓰고 해야 하는가?

귤값을 높이 받기 위해서 비상품 감귤을 파묻어 버리고, 서민들의 겨울철 과일이었던 귤을 감산하는 것이 도시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비칠까?

농산물의 특성이 필요한 양보다 10%가 적게 생산되면 가격은 30%이상 오르고 또 반대로 많이 생산되면 가격이 폭락한다는 사실에 착안한 정책은 매우 단기적으로만 통하는 것이고 또 수입과 수출이 원활하지 않았던 시절에나 맞는 정책이 아닐까?

오렌지 수입관세를 귤산업에 투자하라고 우리가 요구한다면, 사과나 배를 재배하는 농민은 또 어떤 생각을 할까? 너무 귤만 생각한 얌통머리 없는 정책이 아닐까? 또 수입관세를 매기는 곳은 국세청이고 귤산업은 농림부인데 정부로 통칭되지만 부서가 다르면 다른 생각을 가지고 다르게 운영되는데 이러한 정부의 상황을 알고 얘기하는 것인지...

우리가 귤값을 제대로 받기 위해서 감산을 하게 되면 당장은 귤값이 올라가겠지만 농산물 유통에 관계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어느 선 이상으로 귤값이 올라가면 귤이나 오렌지가 아니더라도 외국산 과일을 들여오는 것이 수지가 맞는다는 것을 알 것이다. 결국 양을 줄이면 값이 올라갈 것이다. 그러면 비싼 국내산을 고집하는 대신 다음해에 수입을 늘려버릴 수도 있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감산을 더해야 할런지도 모른다. 혹시 우리가 추진하는 정책은 이렇게 귤의 입지를 지속적으로 줄여버린 것은 아닐까?

정치적인 인물들은 귤을 버리지 못한다. 표가 나오니까. 그래서 귤에 계속 지원책을 마련한다. 그런데 혹시 그렇게 급조된 근시적인 정책으로 인해서 당장은 손해는 보지 않더라도 장기적으로 귤의 입지를 좁히고 제주의 편이 되어줄만한 사람들마저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 우리가 이런 지원책에 기대를 걸고 있는 동안에, 귤에 희망이 없다면 다른 준비를 해야 할 시간과 기회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정범진 제주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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