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론] 세계정상에 오른 창업 70년의 도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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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창업 70주년을 맞는 도요타자동차는 명실공이 세계 1위 자동차 메이커로 등극했다.

일본사람들이 1000년 이상이나 사용했던 지명까지도 바꿀 정도로 사랑하는 기업이다. 고로모시는 1959년 인구 5만명의 양잠도시에 불과했지만, 도요타와 지역발전을 협력하기 위해 도시이름을 아예 회사이름으로 과감하게 바꿨다. 그 결과 도요타(豊田)시는 전국 기초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재정이 가장 튼튼한 도시로 거듭나게 되었다.

도요타의 본사소재지인 ‘도요타시 도요타쵸 1번지’는 도요타그룹의 창업자 가문과 직원들의 성지이자 작은 종교국가와 같은 독특한 기업사회로 자리 잡고 있다. 원래는 가문이름도 ‘도요다’였지만, 외국인이 발음하기 어렵다고 하자 창업자는 회사명을 ‘도요타(Toyota)’로 고쳤다.

창업주인 도요타 사키치(豊田佐吉; 1867∼1930)는 1914년에 도요타그룹 모기업인 도요타자동직기제작소를 창업했다. 그는 초등학교만 졸업했지만 독학으로 자동방직기를 발명한다. 당시 수작업에 의존했던 섬유산업을 크게 일으켰다. 사키치의 정열과 연구정신, 현장주의는 도요타 기업문화의 바탕이 되었다.

창업 2세인 도요타 기이치로(豊田喜一郞;1894∼1952)는 도쿄대학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부친 회사에 입사한다. 그는 모터라이제이션(motorization) 시대를 예견하고 1933년 사내에 자동차부를 설치한다. 1937년에 자동차사업부를 분리·독립하여 도요타자동차공업회사를 발족한다. 그는 1941년 사장에 취임해 도요타의 초석을 쌓은 뒤, 1950년에 발생한 노사분규와 자금난에 대해 책임지고 스스로 물러났다. 도요타는 당시 노사분규의 경험을 활용해 그 뒤 무파업 경영신화를 기록하고 있다.

창업 3세인 도요타 쇼이치로(豊田章一郞; 1925년생)는 나고야대학 공학부를 졸업하고 입사한다. 1960년대에 TQC(전사적 품질관리)를 도입해 도요타의 품질 신화를 일궈냈다. 그는 1982년 제조를 담당했던 도요타자공과 판매를 맡았던 도요타자판의 합병으로 탄생한 도요타자동차의 초대 사장으로 글로벌 도요타로 성장시킨 주역이다. 또한 뛰어난 전문경영인을 키워냈고, 이들 덕분에 도요타는 21세기 진입과 함께 글로벌 톱 메이커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이제 도요타의 미래는 창업 4세로 경영 대권을 준비 중인 도요타 아키오(豊田章男: 1956년생) 부사장 몫으로 돌아갔다.

도요타가 세계 정상의 자동차 메이커로 지속적인 성장을 해온 비결은 창업자 가문의 리더십과 노사화합을 기반으로 하는 독특한 기업문화가 뿌리 내렸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에게 무분규회사, 간판방식, 적시생산시스템(just-in-time system) 등으로 잘 알려진 도요타는 현지·현물·현장 등 ‘3현(現)경영’의 원칙을 세계 어느 곳에서나 적용하고 있다.

2001년 중반 글로벌 도요타의 발전을 위해 도요타에서 일하는 전세계인들이 공유해야 할 경영철학과 가치관 등을 ‘도요타 웨이’(Toyota Way)라고 명명했다. 도요타 웨이를 실현하면서 단순히 강한 회사가 아니라 세계로부터 신뢰받고 존경받는 회사, 즉 ‘덕이 있는 회사’를 지향함으로써 일반기업들의 목표를 뛰어넘으려는 웅대한 야망을 드러내고 있다. 도요타 웨이의 두 기둥은 ‘지속적인 개선’과 ‘인간 존중’으로 상징된다.

가이젠(改善)으로 불리는 ‘지속적인 개선’은 변화를 단순히 받아들이는 것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학습하는 환경을 내부에 만듦으로써 능동적 변화를 이끌어 낸다. 인간경영은 사람을 고르는 문화보다 키우는 문화를 중시하며, 개개인의 성과경쟁보다는 팀워크에 의한 조직의 힘을 키우는 인재를 만드는데 주력한다.<송병식 제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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