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여유 있고 조화로운 삶 속에서 미래 그릴 수 있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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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범(커뮤니티 디자인)·조경아(조각가) 부부
   

출장 왔다가 눈에 담아 간 제주의 풍경이 잊혀지지 않아 뭍생활을 접고 바다 건너 섬 안으로 뛰어든 남자, 권순범(49·커뮤니티 디자이너). 작업할 수 있는 공간만 있다면 어디든 상관없다며 그 남자의 선택을 무조건 믿고 따라 준 여자, 조경아(43·조각가).

 

아직도 여전히 지역주민들에게 ‘육짓것(제주인들이 외지인을 낮잡아 부르는 말)’인 이들 부부는 이곳 제주에 정착한 지 이제 2년하고도 반년을 더 넘겼다.

 

이들에게 제주는 어떤 의미였기에 40년 넘는 세월을 함께 해 온 서울을 떠다 올 수 있었을까.

 

“늘 바쁘고 빠르게 움직여지는 서울의 삶에서 벗어나 귀농·귀촌을 해야겠다고 마음먹던 중귤꽃이 만개한 5월의 제주 경치와 조우한 순간, 바로 이곳이다”고 점찍었다는 권씨. 그는 “속도감 줄이고 즐기는 여유 있는 삶, 빠름과 느림의 조화로운 삶 속에서 새로운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는 이곳이 정말 좋다”며 행복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2012년 8월, 이들 부부는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의 황량한 숲 속에 터를 잡고 손수 땅을 개간하며 지금의 보금자리를 완성하기까지 1년여를 공들였다.

 

어떤 이는 집 한 채 짓고 나면 10년이 늙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 부부에게는 그 말이 무색했다. 직접 벌거벗은 벌판의 돌들을 골라내고, 설계하며 점점 집다운 집이 완성돼 가는 모습을 볼 때면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제주의 땅에 존재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지어진 집을 사서 이사한 것이 아니라 긴 시간 여러 공사업체들과 함께 일을 하면서 제주의 사람들과 직접 부딪쳐 보니 새삼 제주의 속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는 조씨. 그녀는 “제주의 여유로움 내지는 느긋함이 좋아 이곳에 왔으면서도 빠릿빠릿하지 못한 흐름에 갑갑함을 느끼는 자신에게 반성에 반성을 거듭하며 이제는 제대로 제주를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에 오기 전 이들 부부는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기지 않기 위해 6개월 동안 차근차근 서울 생활을 정리했다. 그리고 제주의 역사와 문화, 전통 등에 관한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좀 더 제주와 자연스럽게 섞이기 위해서였다. 몸소 느껴보지는 못했지만 웬만한 제주인들보다 제주에 대해 더 많이 섭렵한 이들이 제주에 대해 아쉬운 게 있다고 했다.

 

“물론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변화는 당연하죠. 하지만 무분별한 개발은 막아야 한다”는 부부. “지금 당장 눈앞의 이득 때문에 제주만이 가지고 있는 가치가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현실을 볼 때 제일 안타깝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 부부의 눈에서 여느 제주인 못지않은 호소력이 느껴졌다.

 

현재 이들은 삼달리 주민이지만 처음부터 융화가 쉬운 것은 아니었다. 어느 지역에나 그 지역만의 ‘텃세’는 있을 수밖에 없다고 믿는 이들. 이들은 텃세를 아직 알지 못하는 서로가 서로에 대해 오해하는 순간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처음 낯선 이들을 경계의 눈으로 바라보던 지역주민들과도 이웃사촌으로 지내며 점점 제주인이 돼 가고 있다.

 

삼달리 그곳에서 물고기나무 게스트하우스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부부. 게스트하우스와 카페의 모든 가구와 소품은 조씨의 손때가 묻지 않은 것이 없다.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한 조씨는 가게 안의 의자에서부터 여닫이 문, 에어컨 커버, 창틀, 하다못해 컵받침까지도 일일이 나무를 깎아 만들어 꾸몄다.

 

작품을 만들기만 하고 전시는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조씨는 “내가 있는 이곳이 바로 갤러리”라고 강하게 어필했다.

 

특정한 곳에 작품이 걸려 지는 순간, 그 작가의 성향은 결정된다고 믿는 조씨. 작품은 누구나 쉽게 만지고, 앉아서 보고, 느껴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그녀에게서 자유롭지만 자신의 작품에 대한 강한 애착이 돋보였다.

 

권씨는 책의 외모를 치장해 주는 책 디자이너 일을 하다가 현재는 제주에서 마을공동체사업을 디자인하며 제주 속으로 한 발 한 발 들어오고 있다.

 

낯선 사람과 문화를 자주 접하다 보면 제주인들의 외지인을 향해 닫혀 있던 눈과 마음도 서서히 열릴 것이라고 믿는 이들. 제주인들이 조금 더 적극적인 주체가 됐으면 좋겠다는 이들. 세계 7대 자연경관을 매일 매일 보고 살아가는 제주 사람들이 부럽다는 이들. ‘괜한 낭만’만 꿈꾸고 왔다간 제주살이는 낭패본다고 굳게 믿는 이들이다.

 

물고기나무. 물고기와 나무는 절대로 같이 만나 공생할 일이 없다. 예전 제주와 이들의 인연처럼 말이다. 하지만 제주 섬의 품 안에 안긴 이들 부부의 감성이 살바람 돼 쉽게 드러내지 않으려는 제주의 마음을 움직일 날이 머지않았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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