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詩人)과 지인(至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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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음악가 박연이 네덜란드 사람이었나?” “아, 그 박연은 다른 사람이에요. 그는 제주도 부근에서 배가 난파돼 조선여자와 결혼하고 조선에서 삶을 마친 벨테브레로 우리나라 최초의 귀화인이에요.”

최근 발간된 ‘천년의 왕국’이란 소설의 주인공이 박연이라는 사실에 놀라 묻자 집사람이 설명한다. 세종의 사랑을 받았던 박연과 인조가 아껴 무과에 급제시킨 박연이 동명이인이란 사실을 모르고 있던 내가 부끄러웠고, 새삼 세종과 악성(樂聖) 박연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박연은 잠시 눈을 감고 숨결을 가다듬은 다음 들고 있던 박(拍)을 쳤다. 아름답고 그윽한 화음이 일제히 울렸고 그 음악은 하늘에서 내려온 화음이었다. 이렇듯 아름다운 음률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박연이 일생일대의 숙업으로 만든 십이율관과 편종, 편경이 아닌가? 주위에 도열해 있던 대신들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이제껏 궁중에서 들었던 아악이 얼마나 엉터리였던가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왕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음 하나가 변할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미소를 머금기도 했다. 그런데 편경을 연주하다 악공들이 윗단 다섯 번째 이칙음을 때렸을 때였다. 왕은 고개를 약간 갸웃거렸다. 연주가 끝나자 왕은 박연을 극찬한 다음 좌중을 놀라게 하는 천부의 지음을 보였다. “경은 윗단 다섯 번째의 이칙을 살펴보도록 하라. 음계가 맞지 않았어.” 박연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자신으로서는 빈틈없이 시험하고 조율했던 일이었다. 그는 이칙의 편경을 벗겨들고 세세히 살펴보다 숨을 멈추었다. 먹줄이 남아있었다. 공원들이 경석을 갈 때 남아있는 먹줄을 보지 못한 듯 했다. 악성의 귀에 예사롭게 들렸던 음이 세종의 귀에 거슬렸던 것이다. 그는 박연의 공적을 치하하여 관습도감제조를 제수하고 우리나라 고유정악인 아악의 제정을 명했다. 이리하여 종묘제향악과 회례아악 등이 완성되었다. 이조시대에는 또 한 사람의 특이한 왕이 있었다. 그는 유명한 시인이었다. 그리고 왕으로서 시집을 낸 것은 그가 유일무이했다. 지금도 전해지는 110여 편의 시 중에서 한 편을 보자. ‘들국화는 시들었는데 집국화는 난만하고, 붉은 매화 떨어지자 흰 매화는 한창이네. 풍물을 구경하며 하늘 이치 안다지만, 인군의 도는 제일 먼저 화목한 정사를 펴는 일이로다.’ 그가 연산군이다. 희대의 폭군은 누구 못지않게 시를 즐겨 짓고 읽었는데, 시는 감각적이며 인생론적인 것이 많았다. 사생활을 염려하여 궁궐주변 민가를 모두 헐어 주민들을 내쫓고, 극악무도한 정치와 주색잡기에 골몰했다.

그러나 위대한 세종의 시대는 소명된 인재들이 직분을 다했던 시대였다. 동래 관노 장영실이 일약 정5품직으로 발탁되어 천문기기를 완성하고, 악학별좌 박연이 조선의 아악을 정비했으며, 느지막하게 등과한 이순지가 칠정산내외편으로 천문학을 정비하였다. 단벌 관복의 황희, 쓰러져가는 초가의 맹사성 등 정치와 학문과 학예가 조화를 이루었다. 김종서가 육진을 개척하고 최윤덕이 4군을 설치하여 태평성대를 이룬 것은 지인(至人·지극히 덕이 높은 사람) 세종의 덕치의 결과였다. 다시금 우리 시대의 지인을 생각해 본다.

<이영운·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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