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속에 꾹꾹 눌러담고 산 '을'을 위한 '헬머니'
<새영화> 속에 꾹꾹 눌러담고 산 '을'을 위한 '헬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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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오디션 프로그램이 난무하다 못해 이제는 욕의 고수를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까지 등장했다. 이름하여 '욕의 맛'.

   

"생짜 욕이 아니라 진정한 문화적 가치가 있는 욕"을 하는 사람을 찾던 제작진의 귀에 어느 날 이정순 할머니(김수미)의 욕이 들려 온다.

   

막 교도소에서 출소한 전과 3범의 할머니에게는 성(姓)은 다르지만 공무원인 큰아들 승현(정만식)과 둘째 아들 주현(김정태)이 있다. 하지만 직장에서 매일 깨지는 큰아들은 부잣집 처가에 얹혀살며 찍소리 못하는 처지고, 둘째 아들은 빚더미에 올라앉은 사실상 백수 신세다.

   

이제는 욕은 입에 담지 않고 살려고 했지만 세상이 할머니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 상황. 결국 할머니는 '헬머니'라는 닉네임을 달고 '욕의 맛'에 출연하게 되는데….


   

영화 '헬머니'는 서바이벌 욕 배틀 오디션 '욕의 맛'에 참가한 강력한 우승 후보자이자 기구한 사연을 지닌 한 욕쟁이 할머니의 얘기를 그린 영화다.

   

시놉시스에서도 풍기듯 이 영화는 고상함과는 거리가 멀다. 심지어 대사의 절반은 영화 리뷰에 인용할 수조차 없는 욕설이다.

   

하지만, 저급하고 상스럽고 듣기 거북한 쌍욕만이 난무할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지하철에서 진상을 부리는 만취 승객에게, 아내를 무시하고 폭력을 일삼는 남편에게, 심지어 자살을 시도하려는 정치범에게까지 상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던지는 '헬머니'의 욕은 묘하게 설득력 있고 심지어 정의롭기까지 하다.

   

'헬머니'가 "복장이 찢어질 것 같아도 어쩌느냐"며 시원하게 내뱉는 욕설은 보는 사람의 가슴까지 뻥 뚫어준다.


   

영화를 연출한 신한솔 감독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죽이는 욕이 있다면 사람의 한을 풀고 사람을 살리는 욕도 있다는 걸 이 영화를 통해 강조하고 싶었다"고 한다.

   

물론 영화를 맛깔 나게 살리는 것은 '헬머니' 역을 맡은 김수미의 덕분이다. 개성 있는 연기로 독보적인 필모그래피를 채워 온 김수미가 아니면 어느 누가 과연 이 역을 이토록 잘해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랩까지 소화하며 '대체 불가능한' 존재감을 과시하는 김수미는 오랜 내공이 담긴 차진 욕설로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속으로만 꾹꾹 눌러담고 살아온 이 시대의 '을'들에게 치유의 손길을 건넨다.


   

김수미는 최근 시사회 후 열린 간담회에서 "을의 입장인 사람에게 제가 시원하게 대리만족해서 보름 정도는 약 효력이 있는 그런 진통제 역할을 해 드릴까 한다"고 말했다.

   

영화는 욕부터 배운 필리핀 여성, "사장님 나빠요"를 외치는 외국인 노동자, "담요는 한 장만 덮고 라면은 먹지 마라"는 여승무원, 콜센터 상담원, 군 이등병 등 '갑(甲)질 횡포'에 시달리는 이들이 총출동해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도 꼬집는다.

   

큰아들 역을 맡은 정만식은 "엄마의 욕이 그리운 분들과 핍박과 눌림 속에서 살아가는 을들이 욕의 잔치에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돈도 빽도 없고, 가진 건 이 주둥아리밖에 없는데 왜 입을 다물고 살라고 하느냐. 다 토해 내."
   

 3월 5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108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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