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에 생명을 불어넣는 조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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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철 제주대 화학·코스메틱스학부 교수>

세상에 수많은 향수들이 태어나고 사라지는 가운데 어떤 것은 대성공을 통해 걸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점멸이 되풀이되는 속성의 밑거름을 토양으로 세인들이 선호하는 향수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향의 원료인 소재들의 품질이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생명을 가진 향수가 제조되기 위해서는 조향사(perfumer)의 손길과 호흡을 거쳐야 한다. 조향사들은 좋은 원료를 찾기 위해 자연과 친숙하고, 지구 방방곡곡을 탐험하고, 수많은 실험을 통해 의미 있는 성분을 추출·분석·창조해야 된다.

 

‘자연에서 얻은 영감으로부터 향을 창조한다’는 것은 환상적이지만, 자연이 품고 있는 각양각색의 향들을 모방하고 이들을 조합해 새로운 향을 탄생시키는 것은 가시밭길의 여정이다. 그러나 한 방울의 사랑에 생명을 불어넣는 정성은 삶의 보람이다.

 

멋진 비주얼에 눈이 뜨이고 아름다운 음악에 귀가 열리듯 후각의 자극에 코가 자연과 하나가 된다. 과연 공간을 완성하는 것은 색일까, 음악일까, 아니면 향일까! 이런 측면에서 ‘조향사는 향을 연주하는 아티스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겔랑(Guerlain) 가문은 1828년 창업 이후 지금까지 5대를 이어가며 집안 대대로 조향사를 배출해온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향수의 명가이자 향수업계의 살아있는 신화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향수회사로 180여 년의 긴 역사를 자랑하는 겔랑의 명성은 프랑스의 유산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겔랑은 나폴레옹 3세의 부인 위젠느 황후를 위한 향수 오데코롱 임페리얼(Eue De Colon Imperiale)을 만들면서 ‘프랑스의 향수’가 됐다.

 

화학자였던 피에르 프랑소와 파스칼 겔랑은 황후의 우아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이에 대한 존경을 표하기 위해 오렌지 블러썸, 베르가못, 레몬, 라벤더, 로즈마리 등의 향을 섞어 향수를 제조했다.

 

한 여인을 위해 탄생한 액체 보석인 사랑의 응집향(凝集香)을 벌집모양의 병에 담았다. 이 고급스런 향에 반한 황후는 겔랑을 왕실업체로 지정했다. 그 후 많은 유럽 왕족과 귀족들이 겔랑의 고객이 되었다.

 

이후 겔랑 가문은 미츠코(Mitsouko), 샬리마(Shalimar), 지키(Jicky), 삼사라( Samsara), 휘그 티(Fig Tea) 등 320여 개가 넘는 향수를 창작했고, 그의 명성은 오늘 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고대에 향을 만드는 사람은 주로 신을 모셨던 제사장, 종교 지도자 혹은 주술사였다. 그리스, 로마시대에 접어들면서 철학과 화학의 발전으로 화학자들이 주로 향료를 만들며 새로운 원료와 추출법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테오플라스토스(Teopllastos)는 화학자로서 향료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선두 주자였다.

 

이후 제조기술이 현저하게 발전했고 17·18세기에 이르러 체계적인 화학자의 손길이 더욱 필요해졌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원료와 합성법을 개발하는 화학자와 조향을 전문으로 하는 조향사가 수레의 양 바퀴가 되어 향수 분야의 발전을 견인하고 있다.

 

그러나 천혜의 자원을 품고 있는 제주에 조향사를 비롯한 향수를 창작하는 기업과 연구소가 전무하다. 제주에서도 이 분야가 활성화되면 좋은 직업군이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이다.

 

풍년을 예견하는 뻐꾸기 소리에는 어떤 향이 실려 있을까? 봄바람에 하늘거리며 일광욕을 즐기는 들꽃은 무슨 향을 잉태하고 있을까? 현무암을 애무하며 흐르는 한라산 청정수에는 어떤 향이 꿈틀거리고 있을까? 이 물음표를 풀고 세계무대에 우뚝 설 수 있는 제주인 조향사가 탄생하면 제주의 자연은 재탄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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