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봐도 반칙이지만, 절묘하게 팔꿈치로 치고 나가 1등을 차지한다. 사람들이 그에게 박수를 보내고, 칭찬과 상을 준다. 돈과 권력도 그의 몫이다.
팔꿈치 사회란 치열한 경쟁의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한국 사회를 꼬집었다. 그러나 남의 불행을 전제로 해 얻은 나의 행복이 과연 가치있는 것일까. 우리 삶이, 그리고 우리 사회가 갈수록 각박해지는 건 교묘한 팔꿈치가 여기저기서 횡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 사회를 특징짓는 무슨무슨 ‘~사회’가 적지 않다. 피로사회, 과로사회, 위험사회, 루머사회 등등.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 속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풍경과 마주한다. 바로 ‘마스크 사회’다. 올 한해 한국사회를 관통할 단어가 그게 아닌가 싶다.
얼마 전, SNS를 통해 급속히 퍼진 마스크 결혼식은 ‘웃픈’ 현실이다. 신랑·신부와 하객들 모두가 마스크를 착용해 기념 사진을 찍은 것인데, 그 한 장의 사진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메르스에 대한 한국사회의 공포를 그대로 상징하면서. 그 결혼식은 서울의 한 예식장에서 장난 삼아 이벤트로 찍은 것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은 지금 마스크로 뒤덮여있다. 길거리에서, 대중교통에서, 회의실에서, 시험장에서 너나 없이 각양각색의 마스크를 둘러댔다. 마스크가 때 아닌 특수로 품귀 현상이다. 값이 몇 배 뛰는가 하면, 주식시장에서도 관련 테마주가 요동친다. 모습을 보면 마스크는 단지 착용을 넘어 패션으로까지 진화한 양상이다. 시민들 사이에선 또 얼마 짜리 마스크를 착용했느냐를 놓고 ‘빈부(貧富)’의 수준까지 가늠한다니 씁쓸하다.
▲물론 전염병 예방을 위해 마스크를 착용하는 건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마스크가 던지는 사회학적 관점은 다른 각도로 생각해 볼 문제다. 마스크 열풍은 정부의 무기력한 메르스 대응에 대한 불신에 기인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때 꽃다운 나이에 희생된 학생들은 “배 안에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당국의 말만 곧이곧대로 믿었다간 어떤 낭패를 당할 지 모르는 일이다. 날개 돋힌 마스크는 그런 점에서 불신의 아이콘이다. 당국이 뭐라 하든 내 몸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심리가 깊게 깔린 우리 자화상이 아닐까. 언제면 이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순수한 민낯으로 서로를 볼 수 있겠나.
오택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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