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선거의 해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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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민선교육감 선거, 14대 총선과 대선 잇따라

1992년은 14대 총선이 헌정사상 처음으로 같은 해 대통령 선거에 앞서 실시되면서 새해 벽두부터 선거 열풍에 휘말렸다.


특히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통일국민당 창당, 노태우 대통령의 내각제 개헌 포기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연기 발표 등 연초부터 변수가 속출해 정국은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었다.


선거의 해였던 1992년 제주에서는 첫 민선 교육감 선출로 선거의 막이 올랐다.


교육자치 실시에 따른 2월 11일 선거에서 강정은 교육감은 교육위원 7명 가운데 6명의 지지를 얻어 임기 4년의 초대 민선 교육감으로 선출됐다.


3·24 총선에서는 제주도개발특별법이 최대 이슈로 부각됐다.


선거운동기간 내내 ‘제주도에 유익한 법’이라는 민자당 후보들과 ‘폐기·수정’을 주장하는 야당·무소속 후보들 간에 격론이 이어졌다.


모두 9명이 입후보해 3대 1의 경쟁률을 보인 총선에서 도민들은 무소속인 현경대·양정규·변정일을 선택함으로써 무소속이 강세를 보이는 독특한 전통을 이었다. 강희찬은 민주당 전국구 의원에 당선됐다.


모두 8명이 출마한 14대 대선전은 12월 1일 국민당 정주영 후보가 제주를 찾아 본격 유세를 치르면서 가열됐다.


정 후보는 경제 개혁, 특별법 개정, 감귤가공공장 설치와 수출 장려, 제주대 의대 신설, 특색 있는 관광명소 개발을 공약했다.


민주당 김대중 후보는 12월 11일 내도해 감귤 보호 육성, 특별법 폐지, 4·3에 대한 합리적 해결, 도민에게 이익을 주는 건전한 관광 실현을 내걸고 지지를 호소했다.


민자당 김영삼 후보는 다음 날 제주에서 산업도로의 국도 승격, 제주국제공항과 항만 확장, 감귤 보호를 위한 정책 배려 등을 내걸고 제주를 환태평 시대의 중심 지역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박찬종·백기완 후보도 내도해 깨끗한 정부 수립, 제주도고향법 제정 등을 약속하면서 득표 경쟁에 나섰다.


선거전은 투표일을 불과 사흘 앞두고 부산지역 기관장들이 김영삼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는 이른바 ‘초원복국집사건’이 터져 나오면서 혼란에 휩싸였다.


투표 결과 민자당 김영삼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김영삼 후보는 제주에서 유효 투표의 40%인 10만4292표(전국 988만4274표), 김대중 후보는 8만5889표(전국 797만8970표), 정주영 후보는 4만2130표(전국 382만7518표)를 각각 득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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