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사상 첫 4·3 합동위령제 봉행
(26)사상 첫 4·3 합동위령제 봉행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1994년 4월 3일은 제주4·3사건으로 억울하게 희생된 영령들을 위로하고 도민 화합을 이루는 첫 단추를 꿰는 중요한 날이었다.

 

그동안 4·3 관련 단체들이 따로 거행해 온 추모제를 최초로 합동 봉행함으로써 도민 화합의 장을 마련한 것이다.

 

제주지역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4월제 공동준비위원회는 1989년부터 4·3추모제를, 4·3유족회는 1991년부터 별도의 4·3위령제를 봉행했다.

 

1994년 3월 15일 양측은 제주도의회의 중재로 회동을 갖고 극적으로 합동 위령제 봉행에 합의했다.

 

행사 명칭은 ‘제46주기 제주4·3 희생자 위령제’로, 주최는 양측이 공동 참여하는 ‘봉행위원회’에서 맡기로 했다.

 

4월제 공동준비위원회는 그동안 사용해왔던 추모제 명칭을 고집하지 않았고, 4·3유족회는 무장대 가담 혐의가 있는 사망자도 희생자 명단에 넣는 것을 용인하는 등 한발씩 양보해 극적이 타결이 이뤄졌다.

 

결국 4월 3일 제주시 탑동광장에서 역사적인 합동위령제가 처음으로 봉행됐다.

 

제주일보의 전신인 濟州新聞(제주신문)은 1994년 4월 5일자 사회면에 ‘4·3 진상규명 명예회복 새 章(장)’이라는 제목으로 “제46주기 제주4·3 희생자 위령제가 3일 상오 11시 신구범 제주도지사와 장정언 도의회 의장을 비롯 제주지역 국회의원 및 유족 등 4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주시 탑동광장에서 열렸다. 사상 처음으로 4·3유족회와 4·3공동준비위원회가 공동집행에 합의, 제주4·3 희생자 위령제 봉행위원회가 주최하는 범도민 행사로 열린 이날 위령제는 4·3 희생자의 원혼은 부르는 초혼의식을 시작으로 불교, 천주교의 종교의식과 추도사, 헌화 및 분향 순으로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김대영 기자 kimdy@jejunews.com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