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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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은 습도에 약한 것일까. 생각해보니 장마철 잦은 비 날씨와 함께 그 기세가 꺾였던 것 같다. 모래 사막의 고온건조한 곳에 사는 낙타에서 발생한 바이러스니, 습한 날씨에는 취약할 것이라는 게 돌고 돈 얘기였다. 메르스가 전국적으로 기승을 부리던 지난달, 초여름의 불청객 장마를 기다린 건 그런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장마와 함께 메르스가 꼬리를 내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 설(說)에 고개를 흔든다. 메르스가 습도에 약하다는 데 대해 한 마디로 ‘근거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그를 믿고 싶어한 것은 의술이, 정부가 감당 못하는 사태에 날씨에라도 기대보려는 절박한 심정이 아니었을까.

▲다행히도 제주는 ‘메르스 청정지역’을 굳건히 지켰다. 제주도 메르스대책본부가 지난 17일로 메르스 종식을 선언한 것이다. 그날 0시를 기해 제주에 남아 있던 메르스 관찰 대상자 1명이 자가 격리에서 해제됐다. 또 지난 2주간 추가 의심 신고자가 나오지 않았고, 지금까지 접수된 메르스 의심 신고자 103명도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 한 때 제주관광을 다녀간 40대 남자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적지 않은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제주도정과 의료계, 그리고 도민들의 자발적인 협조로 그 고비 역시 잘 넘었다.

▲메르스 사태는 그렇게 일단락됐으나, 후유증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바이러스 자체의 위험성도 문제였지만, 경기 침체와 사회적 불신이라는 보다 심각한 후폭풍을 몰고 왔다. 제각기 살아나갈 방법을 꾀한다는 뜻의 각자도생(各自圖生)이 유행어로 등장한 것은 가장 큰 사회적 손실이다. 이는 무능한 정부에 대한 불신의 반작용이다.

국가적 재난이 닥쳤음에도 정부가 나를 지켜줄 능력이 없음을 직감할 때 누구라도 각자도생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나. 지난해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국민들은 이미 정부의 위험관리 시스템에 자신의 생명을 믿고 맡길 수 없음을 학습했던 터다.

▲메르스 사태가 남긴 각자도생은 그래서 씁쓸하다. 국가, 정부의 존재 이유는 재난 때 그리고 위기 상황에서 나와 내 가족의 생명을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그러니 우리가 세금을 내고, 군대에도 가는 것이다.

메르스는 그 믿음을 저버리게 했다. 정부로부터 설득 받지 못하고 신뢰를 얻지 못하니 국민들은 불안감과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다시금 각자도생이 회자되는 제2의 메르스 사태가 재연되지 말기를.

오택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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