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으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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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권일(수필가·제주영송학교 교장)
   

형님의 삶은 치열해서 더욱 장엄하다.

 

여명(黎明)의 정적을 깨며 농장으로 향하는 그의 경운기 시동음이 들리면, 누구라도 나태(懶怠)에 기미(羈縻)된 이부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밖에 없다.

 

고희(古稀)를 훌쩍 넘긴 나이지만, 신새벽부터 일터를 향하는 그는 마을 사람들의 ‘큰 바위 얼굴’이다. 이마를 맞대고 살아가는 그와 나는 형제이면서 이웃사촌이다.

 

그는 빈한(貧寒)한 가정의 12남매 중 장남이었다. 일찍 세상을 뜨신 고모님과 고모부의 영정(影幀) 앞에서, 젊은 그를 엄습하던 절망은 크노소스의 미궁(迷宮)보다 깊었으리라.

 

그러나 자신의 품에 안겨 먹이를 간구(懇求)하는 어린 동생들 앞에선 머뭇거릴 틈이 없었고, 그들을 위한 제단에 바쳐진 희생(犧牲)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어둠의 터널과도 같았던 50여 년의 세월.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직한 소처럼, 동생들을 건사하기 위해 온갖 일을 마다하지 않았고, 비루먹은 개처럼 지친 몸이었지만, 동생들의 안위(安危)에 대한 노파심으로 쉽게 잠들지도 못했다.

 

쇠털 같았던 인고(忍苦)의 시간들, 그러나 그 막막함의 끝에는 희망의 빛이 있었다.

 

장성한 동생들이 하나 둘씩 저마다의 짝을 만나, 새 둥지를 틀어 그의 품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런 동생들에게, 그는 온몸으로 체득한 삶의 철학을, 낙인(烙印)처럼 가슴에 새겨 주었다. 더 못주는 자신의 무능력을 아쉬워하며, 피땀이 흥건한 돈뭉치를 쥐어 주었고, 그 때마다 열 한 명의 동생들은 하나같이 손사래를 치며 흐느꼈다.

 

부모님들의 기제사(忌祭祀)일이면, 그의 집 앞은 자동차가 장사진(長蛇陣)을 이룬다.

 

고소한 제사음식에 묻어오는 형제들의 웃음소리가 고즈넉한 마을의 지붕들을 타고 넘는다.

 

적빈(赤貧)으로 출발했지만, 풍요(豊饒)의 결승점에서 당당한 동생들을 보며, 그는 행복하다.

 

지난(至難)한 세월은, 곶자왈의 잡목들처럼 그의 얼굴을 주름살로 뒤덮었지만, 넉넉한 그의 웃음에는 세상을 다 가진 사람의 여유가 담겨 있다.

 

요즘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왕자의 난’으로 매스컴을 더럽히고 있다.

 

산업사회의 권력인 돈을 놓고 벌이는 ‘그들만의 리그’에 식상하면서도, 잊을만하면 회자(膾炙)되는 재벌가 형제들의 돈 놀음에, 민초(民草)들의 박탈감과 위화감이 깊어만 간다.

 

한 어머니의 태(胎)에서 태어나 같은 젖을 먹고 옹알이를 하며 자란 형제들이, 돈 때문에 시정잡배보다 더 추악한 장면을 연출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회장님이란 늙은 아버지가 불쌍하고, 그가 평생 쌓아올린 부귀영화의 성채도 한낱 모래성이었음을 절감한다.

 

더구나 골육상쟁(骨育相爭)도 마다하지 않는, 그 형제들의 ‘이기적 유전자’가 이어질 때, 그 후손들의 집안도 ‘콩가루’가 될 개연성이 높지 않을까 하는 안쓰러움에 마음이 불편하다.

 

노동의 선물인 형님의 옹골찬 등판을 보며, 형제애(兄弟愛)의 아름다움을 새삼 곱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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