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권하는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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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어 주선(酒仙)은 세속에 구애됨이 없이 두주(斗酒·한 말 정도의 분량이 되는 술)로써 낙을 삼는 사람을 뜻한다. 그렇다면 시대를 동틀어 우리 역사에서 ‘3대 주선’은 어떤 인물들일까. 인터넷을 뒤지다가 이를 선정한 흥미로운 자료를 발견했다. 1994년 각계 인사들이 뽑은 ‘한국사의 주선 10걸’이 바로 그것이다.

놀랍게도 주선 1위는 기라성 같은 남성 주당(酒黨)들을 제치고 조선 최고의 명기인 황진이가 차지했다. 2위는 술과 시로 자기 이상에 취해 살다간 수주 변영로에게 돌아갔다. 3위는 청록파 시인인 동탁 조지훈이었다. 김삿갓, 김시습, 임제, 김동리, 임꺽정, 대원군, 원효대사ㆍ연산군ㆍ마해송 등이 차례로 그 뒤를 이었다.

▲생존 당시 ‘신출귀몰의 주선’, ‘행동형 주걸’로 불렸던 조지훈은 “술을 마시는 데도 엄연히 등급이 있다”며 술꾼의 등급을 바둑에 비유한 글을 썼다. ‘술은 인정이라’는 수필에서다. 최하 단계인 9급은 술을 아주 못 먹진 않으나 안 먹는 불주(不酒)다. 2급 반주(飯酒)는 밥맛을 돋우기 위해 술을 마시는 단계다.

술을 취미로 맛보는 애주(愛酒)는 초단이다. 술을 아끼는 6단 석주(惜酒)를 거쳐 7단 낙주(樂酒)에 이르면 술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는 주성(酒聖)의 반열에 들어선다. 그러다 8단 관주(關酒)가 되면 술을 보고 즐거워하지만 마실 수 없게 된다. 이윽고 술로 말미암아 다른 세상으로 떠나는 최고 9단의 폐주(廢酒)에 다다르고 만다.

▲제주지역엔 이른바 ‘괸당문화’란 게 있다. 혈연과 지연으로 뭉친 섬 지역 특유의 정서를 일컫는다. 각종 경조사와 행사, 모임 등이 수 없이 많은 건 그 때문이다. 일터와 집과의 거리가 비교적 가까워 퇴근 후 시간적 여유도 충분하다. 반면 여가 활동의 다양성은 육지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편이다.

그만큼 술자리 횟수가 잦고 술을 자주 마실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그래서일까. 도내 음주 실태가 전국과 비교해 과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도민들의 고빈도 음주율이 13.2%로 전국 평균(10.2%)을 크게 웃돈 것이다. 고빈도 음주율은 주 3회 이상 술을 마신 사람의 비율을 말한다. 한국은행 제주본부의 분석 결과다.

이로 볼 때 도민들 사이에 두주불사의 주선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데 그 대가는 만만치 않다. 도민 1인당 70만원(2013년 기준)에 육박하는 경제적 비용을 부담한 게다. “허, 그것 참….” 그나저나 아무리 술을 마셔도 관주 또는 폐주의 경지에 오르는 건 곤란한 일이다.

고경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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