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민숙. 금능꿈차롱작은도서관장 / 시인
최근 들어 ‘공간’ 만들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행정이나 전국 문화 사업을 주관하는 재단 등에서 시행하는 공모 사업에도 이 공간이 키워드가 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마을마다 혹은 기획사, 단체마다 공모 사업과 맞아떨어지는 마땅한 공간을 찾는 일이 많아져가고 있다. 얼마 전 필자도 공간을 마련하지 못 해 정말 하고 싶었던 하나의 공모 사업을 접은 일이 있었다. 기존의 방치해 둔 공간을 새롭게 리모델링해서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 시킨다는 것은 꽤 매력적이다. 그러고 보면 제주사회에서 ‘공간’은 앞에서 정의한 내용에서 더 업그레이드 된 ‘제주문화’의 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기도 하다.
제주로 온 수많은 젊은 이주자들은 제주의 폐가나 창고를 무상임대 혹은 저렴하게 임대해서 그들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새롭게 색과 향을 입혀 전혀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 이 외국에서나 봄직한 이국적 공간들은 게스트하우스나 카페로 재탄생되어 인기리에 운영이 되고 있다. 기존의 제주인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새롭게 개조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사고와 아이디어가 참으로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부러움 뒤에는 더 많은 질량의 안타까움이 남는다. 너무 독특함을 추구하는 나머지 제주적인 모습이 아닌, 국적불명의 공간으로 변해간다는 것이다. 제주를 방문한 사람들에게 제주의 모습이 아닌 공간에서 그 여행의 추억을 담아 주는 것은 어찌 관광객들에게 사기를 치는 느낌이 든다. 제주적인 모습을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공간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것, 어느 곳에서도 혼자 예쁘게 동떨어지지 않는 공간을 이어간다는 것, 그래서 그 공간에서 삶을 복원하는 여러 이야기들을 채울 수 있다는 것, 앞으로 우리는 이 내용에 좀 더 집중을 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방치해 놔둔 공간을 새롭게 만든다는 것은 매우 건설적인 일이다. 하지만 새로운 공간을 조성하기에 앞서 기존의 공간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는지, 무조건 새로운 공간만을 좇을 것이 아니라 기존의 공간을 활성화 시킬 수 있는 방안은 없는지 더욱 고민을 해 봐야 될 것이란 생각이다. 무차별적으로 선정하거나 심사해서 만들어진 공간이 몇 년 지나지 않아 관리가 안 되는 죽어 있는 공간으로 방치가 된다는 것은 그 공간과 함께 만들어지는 기억조차 삶의 복원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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