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제주의 공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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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민숙. 금능꿈차롱작은도서관장 / 시인
   
윤대녕 작가의 에세이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에 보면 공간은 ‘무엇이 존재할 수 있거나 어떤 일이 일어나는 자리’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또한 지금은 사라진 공간이 되었지만 그 공간과 함께 했던 추억만으로도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던 과거의 기억들을 복원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고 작가는 고백하고 있다. 이 말은 다름 아닌 삶을 복원하는 일이고, 더불어 삶이 남겨준 것이 무엇인가를 비로소 알게 되는 깨달음이라고 말한다. 백배 동감한다. 지금은 보기 힘든 공중전화박스에서 느꼈던 간절함, 늦은 시간 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느꼈던 피곤함 혹은 버스가 도착했을 때의 안도감, 우체국에서 편지봉투에 침을 발라 우표를 붙이고 받을 사람을 생각하던 행복감, 젊은 날 싸한 소독 냄새 풍기던 허름한 병원에서 미래를 걱정하던 불안감 등 공간 안에서 일어났던 기억들이 모두 모여 오늘을 만들어 주었다. 물론 앞으로의 내일도 지탱해 줄 것이고 하나하나 내 삶을 복원하는 과정, 내 삶이 내게 남겨준 것에 대한 깨달음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최근 들어 ‘공간’ 만들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행정이나 전국 문화 사업을 주관하는 재단 등에서 시행하는 공모 사업에도 이 공간이 키워드가 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마을마다 혹은 기획사, 단체마다 공모 사업과 맞아떨어지는 마땅한 공간을 찾는 일이 많아져가고 있다. 얼마 전 필자도 공간을 마련하지 못 해 정말 하고 싶었던 하나의 공모 사업을 접은 일이 있었다. 기존의 방치해 둔 공간을 새롭게 리모델링해서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 시킨다는 것은 꽤 매력적이다. 그러고 보면 제주사회에서 ‘공간’은 앞에서 정의한 내용에서 더 업그레이드 된 ‘제주문화’의 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기도 하다.

제주로 온 수많은 젊은 이주자들은 제주의 폐가나 창고를 무상임대 혹은 저렴하게 임대해서 그들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새롭게 색과 향을 입혀 전혀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 이 외국에서나 봄직한 이국적 공간들은 게스트하우스나 카페로 재탄생되어 인기리에 운영이 되고 있다. 기존의 제주인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새롭게 개조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사고와 아이디어가 참으로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부러움 뒤에는 더 많은 질량의 안타까움이 남는다. 너무 독특함을 추구하는 나머지 제주적인 모습이 아닌, 국적불명의 공간으로 변해간다는 것이다. 제주를 방문한 사람들에게 제주의 모습이 아닌 공간에서 그 여행의 추억을 담아 주는 것은 어찌 관광객들에게 사기를 치는 느낌이 든다. 제주적인 모습을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공간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것, 어느 곳에서도 혼자 예쁘게 동떨어지지 않는 공간을 이어간다는 것, 그래서 그 공간에서 삶을 복원하는 여러 이야기들을 채울 수 있다는 것, 앞으로 우리는 이 내용에 좀 더 집중을 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방치해 놔둔 공간을 새롭게 만든다는 것은 매우 건설적인 일이다. 하지만 새로운 공간을 조성하기에 앞서 기존의 공간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는지, 무조건 새로운 공간만을 좇을 것이 아니라 기존의 공간을 활성화 시킬 수 있는 방안은 없는지 더욱 고민을 해 봐야 될 것이란 생각이다. 무차별적으로 선정하거나 심사해서 만들어진 공간이 몇 년 지나지 않아 관리가 안 되는 죽어 있는 공간으로 방치가 된다는 것은 그 공간과 함께 만들어지는 기억조차 삶의 복원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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