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벌초엔 고향의 향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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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하. 제주여자중학교 교사/수필가
   
천고마비의 계절, 명절을 앞두고 조상의 묘를 벌초하기 위해 떨어졌던 가족들이 모여든다. 육지에 사는 이들도, 같은 섬 하늘아래 살면서도 서로 접하지 못하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숱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곡창처럼 차곡차곡 쌓아 뒀던 소중한 얘깃거리들이 묘소를 오가며 정겨운 가족애를 나누는 풍경이 아른거린다. 마치 흰 구름이 돛단배처럼 청명한 가을 하늘을 유유하게 흘러가는 여유로움 같은, 고향의 모습이다. 씨를 털고 난 깨 짚단에 모슬포자리돔이 지글지글 익어 가는 냄새는 온 동네에 진동했다. 방어보다 크지 않으면서도 고집스레 돔의 자리를 지키는 이유는 고향의 향기를 갖고 있기 때문일까.

고향을 떠나온 지 삼십년이 지났다. 간혹 갑장모임이나 친척 대소사를 보기 위해 찾지만 조그만 반딧불과 자리 굽는 배지근한 냄새는 사라졌다. 밤새 잠들지 않는 매미소리와 네온사인 속에 낯선 이들이 흥청거리는 타향이 돼 버리고 말았다. 고향인데도 이방인이 돼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주변인으로 버림받은 신세가 된 느낌이다. 지금 이곳은 나의 고향이 아니라 그들의 터전이다.

나의 고향은 삼십 년 전의 시간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사람들이 어깨를 부닥치며 지나는 이 자리는 어릴 적 아스팔트 신작로다.

어릴 적 고샅길을 나와 아스팔트길을 걸으면 검정 고무신이 쩍쩍 달라붙었다. 신발을 두 손에 들고 뜨거운 아스팔트를 맨발로 내 달리면 초등학교가 있었다. 단층 양철 지붕 교정 앞 넓은 운동장엔 고무줄을 뛰는 단발머리 소녀들의 머릿결이 출렁이던 곳. 저지레가 옹골찬 악동들이 검정 고무줄을 끊고 도망가면 뒤따르다가 털썩 주저앉아 양손사리로 눈물을 훔치던 곳이다.

이른 새벽 작박 동산의 교회 종소리는 뎅그렁거리며 마을 사람들을 깨운다. 아버지는 초가집 마당 한쪽 귀퉁이 외양간에서 늙은 암소를 깨웠다. 정낭 열어 올레를 빠져나오는 달구지에는 차롱을 감싸 안은 어머니가 졸고 있다. 성미 순한 암소는 섯단 동산으로 가는 길을 알고 조심걸음을 한다. 배고픈 작은 송아지가 젖 달라고 달구지 앞을 오락가락하면 어미 소는 자드락 길 펀펀한 모퉁이에 걸음을 멈추고 새끼에게 젖을 물린다. 어미 소가 고개를 돌려 고삐 잡은 손을 쳐다보면, 아버지는 길가 돌담에 앉아 봉초를 한 숨 길게 내뱉는다. 봉초 연기는 아직 동살 트지 않은 돌밭 위를 휘돌다가 어슴푸레하게 사라졌다. 송아지가 어미 젖통을 들이박는 소리에 놀란 꿩이 잡풀 속에서 후다닥 날면 새우잠 자던 어머니는 깨어 주변을 살폈다. 장끼인 것을 알고는 이내 눈을 감아 버린다. 까투리였으면 꿩알이라도 얻을 수 있는 행운을 바랐던 것일까. 가을을 넘긴 방앗간은 음산한 곳이다. 어머니는 귀신이 나온다며 겁을 주었다. 가로등이 없었던 백구 네거리의 방앗간은 가끔가다 여자 귀신 소리가 들리기도 하였다. 방앗간이 처녀 총각 만남의 장소였던 것을 몰랐던 어린 나는 그 소리가 무서웠다.

헛헛한 웃음이 입가에 흐른다. 주마등처럼 왔다가 사라지는 옛 추억, 물방울이 터지듯이 산산이 부서져 버리고 손바닥엔 아무것도 없다. 잊히던 고향의 숨결들, 아직도 멈추지 않은 심장의 박동소리와 함께 내 안에 살아있거늘 오히려 잊음이 더해 가는 내가 초라함을 느낀다. 아버지 봉초가 살아 피어나는 마음 속의 고향, 아직도 살아있다. 이번 벌초엔 고향의 향기에 젖어 봄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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