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낙수(落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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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시인/수필가
   
책을 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작품이 있어야 하고 돈도 뒷받침돼야 가능한 일이다. 사정이 되지 않으면 몸을 사리면 되는 것인데, 책을 냈다고 구시렁거릴 일은 또 아니다.

책을 받은 사람들로부터 인사 전화나 문자메시지 혹은 메일을 받는 것으로 큰 힘이 된다. 드물지만, 어떤 이에게선 편지나 축전을 보내오기도 한다. 방식이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책을 잘 받았다고 인사를 해 오면 기쁘고 즐겁다. 인사치레를 하고 나면 받은 사람도 홀가분할 것이다. 대가를 바라서 한 일이 아니니, 조그만 성의 표시에도 감격하는 게 글 쓰는 사람의 여린 감성일지도 모른다.

얼마 전, 중앙문예지에 월평(月評)을 쓰기 위해 거기 실린 수필을 읽다 놀란 적이 있다. ?혜존(惠存)과 춘사(椿事)?라는 글이었다. ‘혜존’이란 책을 받는 이의 이름 뒤에 쓰는 말로 ‘받아 간직하여 주십시오’ 하는 정중한 예도가 들어 있다. 한데 고서점을 돌다 보니 서가 한 구석에 자신이 친필로 사인한 책이 꽂혀 있는 게 아닌가. 충격에 아찔하고 기가 막혔다는 것이다. 이야말로 ‘뜻밖에 일어나는 불행한 일’, ‘춘사’다. 어찌할 것인가. 나무랄 일 다 나무라면서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잖은가.

내게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전임자가 전보하면서 책상 정리를 하며 내가 증정한 수필집을 두고 떠난 걸 내 눈으로 보았다. 달랑 그 책 한 권이 놓여 있는 분위기가 마음을 몹시 무겁게 했다. 차라리 달리 내버리든가, 눈에 띄지 않게 처분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하긴 책을 받자마자 휴지통에 버리는 사람도 없지 않다.

이렇게 푸대접 받는 책을 왜 내야 하는지 어처구니없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도 책을 내는 것은 내 문학에 대한 예열 혹은 검속의 의미가 있어서다. 책 한 번 내면서 나는 내 문학에 한 획을 긋는다. 새로운 변경을 열기 위해 벽 하나를 넘는다고 생각하면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번에도 네 번째로, 시집과 수필집을 동시 출간했다. 반향이 있었다. 전화, 문자, 메일 등 수십 통이 답지했다. 축전과 편지도 받았다.

평생 민속박물관을 해 오신 J시인의 편지엔 눈시울을 붉혔다. 노령에도 불구하고 4백 자 원고지에 꾹꾹 눌러쓴 사연 속에, 이사를 했으니 지나는 길에 꼭 한 번 들러 달라시며, ‘한밝’이라는 주택의 201호까지 꼼꼼히 적어 놓았지 않은가.

직전에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을 지낸 J소설가는 내 시집에서 두 작품, ‘글의 시간’과 ‘종소리’를 감명 깊게 읽었다고 작품 제목까지 꺼내 놓았다.

수필 쓰는 사람이면 다 아는 원로의 축전에 더위도 물렸다. ‘모색 속으로?와 ?그때의 비 그때의 바람?, 두 권의 책을 받고 틈틈이 읽으며 선생님의 문학적 열정과 작품의 완성도를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귀한 책을 보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인사가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지면에서 좋은 글 늘 기대하겠습니다. 정태헌’

그러나 이번에도 ‘혜존’ 뒤로 침묵하는 다수들이 있었다. ‘말없음’이 이심전심으로, 뜻이요 마음인즉 탓할 것은 못 된다. 다만 이런저런 빌미로 목소리 한 번 듣고 싶은 게 인지상정 아닐까. 워낙 소통하기 좋은 시절이라 하는 얘기일 뿐이지 다른 깊은 속정을 내비치려는 뜻은 전혀 없다.

앞으로도 많은 시인 작가들이 책을 내고, 책을 내는 족족 문우며 지인들에게 증정할 것이다. 단, ‘혜존’이 ‘춘사’가 되는 일만은 없었으면 한다. 책을 받은 사람으로서 기본 소양에 속하는 일이다.

이번에 고집스레 책값을 계좌 입금한 우도의 K시인은 너무 결벽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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