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도떼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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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작가/칼럼니스트
   
‘도떼기시장’이란 일정한 곳에서, 재고품??중고품?고물 따위의 온갖 상품의 도산매나 방매 또는 비밀거래가 이뤄지는 시끌벅적한 시장의 속칭이다. 정상적인 시장이 아니다. 얼른 부산 도떼기시장이 떠오른다.

상품에 도떼기시장은 서민적인 친근감이 느껴지지만, 그게 언어, 우리말이 그러하다면 도무지 용인할 수 없는 일이다.

일단, 우리 사회에서 습관적으로 쓰고 있는 줄임말이 문제다. 예시하면, ‘국대’는 국가대표선수를 말하지만 소통에 어려움이 좀 있다. 하지만 축구를 좋아하다 보면 바로 들어온다. 어느 날, 놀라운 줄임말에 전전긍긍했다. 입법 쪽에서 오르내리는 ‘단통법’. 아무리 잡아 흔들고 좌우로 늘려도 도무지 풀리지 않는 게 아닌가.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인 걸 가까스로 알아냈다. 10음절의 말을 단 3음절로 줄였으니 그게 어디 쉽사리 통하겠는가. 국어 선생 전력이 무색해 낯이 따가웠다. 아무리 바쁜 세상이라지만 숨은 고르며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요즘 청소년들 말이 고삐가 풀렸다. SNS에 정체불명의 언어가 난무하고 있어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트위터, 페이스북을 거의 도배하다시피 하는 수준이라 참으로 염려스럽다. 비속어나 외국어를 제멋대로 합성해 구세대로서는 눈도 귀도 막고 있어야 하는 외계어에 가까운 것들이다. 소통 단절이 두렵다.

‘하건(학원)’, ‘웨(왜)’처럼 소리 나는 대로 적은 말이나, ‘좀따(좀 이따)’ 같은 줄임말은 그나마 어림짐작이 가능하나, 조금만 더 들어가면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애잔보스(애잔하기가 boss급, 매우 안 됐다)’, ‘자살각(‘각’은 ‘~할 폼’이라는 뜻, 차라리 자살하고 싶을 만큼 싫다)’. 이 지경의 정체를 알 수 없는 합성어로 의미도 그렇지만 조어적인 발상이 놀랍다.

일본말을 적당히 버무린 것들에 이르러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기무띠(기분 좋다)’는 주로 일본 성인영화에 나오는 것이라 애교로 봐 주기도 어려운데, 흔한 게 정도를 넘는다. ‘극혐데스(극도로 혐오스럽다)’, ‘인정대스(인정한다)’는 우리말에 일본말 종결어미 ‘데스’가 붙는 경우다. 십대들은 “단어를 다 치기 귀찮아서, 재미있어서, 친구끼리 쓰다 보니 버릇이 돼서’ 등의 이유를 단다.

‘좀빡(화난다, 미치겠다)’, ‘개빻음(빻아 놓은 것처럼 못 생겼다)’처럼 어간에 욕설이나 비하의 접두사를 갖다 붙여 강조적인 의미를 담은 것도 있어 정서적으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한 국어과 교수는 “청소년들이 예민한 언어감각으로 새로운 소통방식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큰 문제로 볼 것은 아니다.”면서도 “상황이나 맥락에 맞지 않게 사용하는 문제나 비하, 차별의 무의식적 내면화는 우려가 작은 게 아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세대 간에 언어적 장벽을 쌓게 되니 그냥 간과할 일이 아니다.

이러한 언어 파괴현상은 채팅과 메시지 등 문자문화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특히 무분별한 줄임말과 합성어, 은어, 맞춤법 포기 등이 예사이니. 온라인에서 쓰던 표현들이 뛰쳐나와 일상 대화에서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어 파급 공간이 무한 확대될 추세다. 언문일치에서 거꾸로 문언일치를 보이는 언어문화의 변동이 일어나고 있어 걱정이다. 우리말이 도떼기시장이 돼 가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맛집 탐방이라 하면 되는 것을 굳이 ‘먹방투어’라 할 건 뭔가. 말을 줄여 쓰는 것도 그렇다. 촌각을 다툴 일도 아니잖은가. 좀 늘어져도 본딧말을 쓰면 된다. 어른들이 말의 밑동을 마구 흔들어 버리면, 자극을 받는 건 우리 아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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