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나이 들어 생기기 마련인 주름을 인위적으로 손질할 필요까지? 본보(本報) ‘제주논단’ 필진 중 한 분인 수필가 김길웅 선생이 쓴 ‘주름에도 기억이 있다’에서 보자면 주름은 결코 저주의 대상이 아니다. 섬세하게 써 놓은 개인사의 사료(史料)를 주름으로 정의한다. 그러니 이 주름을 지우는 행위는 그 자체로 불경한 것이고, 자신에 대한 배신일지 모른다는 그의 글에 공감하게 된다. 한 문장을 더 부연하자면 “살아온 시간이 그 축적물로 층위를 쌓아 놓은 것이 주름이니, 그게 없다면 삶이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한 달전쯤, 어느 중앙지 칼럼에 소개된 것에도 여운이 남고 있다. 은퇴한 이탈리아 여배우가 사진관에 가서 카메라 앞에서 사진사에게 조용히 부탁했다고 한다. “절대 내 주름살을 지우거나 수정하지 마세요.” 그 말에 사진사가 다소 당황한 표정을 짓자 그 여배우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걸 얻는 데 평생 걸렸거든요.”
이 여배우에게 주름은 더 이상 젊음을 방해하는 골칫거리가 아니다. 오히려 당당한 삶의 자취이자 생의 이력으로서 소중하다. 애써 그걸 지우려 안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한때는 안티-에이징(Anti-aging)이 시대적 트렌드로 떠오른 적이 있었다. 나이를 거스른 젊은 외모에 탱탱한 피부가 부러움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무조건 어려 보인다고 꼭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는 분위기가 더 짙다. 이른바 웰-에이징(Well-aging)이다. 노화(老化)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그에 걸맞은 멋진 인생을 살아가겠다는 움직임이다.
▲그러고 보면 ‘곱게 늙는’ 웰-에이징의 첫째 조건이 나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과도한 안티-에이징으로 인해 나이 들어서도 주름 한 줄 없고, 지나치게 팽팽한 피부는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럽고 어색하다.
사적인 얘기를 하자면, 사내 동료가 이발할 때마다 감행하던 검은 머리 염색을 이제 포기했다. 이 나이에 누구한테 잘 보일 일이 있느냐는 것인데, 그 역시 의미를 부여하자면 안티-에이징에서 웰-에이징으로 노선을 바꾼 것이다. 며칠 보니 세월의 흔적인 반백인 모습이 그런대로 정겹다.
오택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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