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북로에 핀 꽃무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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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하. 제주여자중학교 교사/수필가
   
나의 하루 일상에서 출퇴근은 똑같은 하루이건만 동전 양면이 그렇듯 그 느낌은 사뭇 다르다. 기대감 속의 출근길이라면, 퇴근길은 소금 절인 김장배추와 같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돌다 보면 체력은 소진되고 항상 제자리에 있다. 일상에서 별다른 변화를 바랄 것도 없는 교직 일선, 그나마 이것이 천직이려니 하고 스스로에게 위안을 해오지만.

연북로는 계절에 따라 새로운 옷을 갈아입는다. 이른 봄 노란 팬지 군락에서 오월의 붉고 흰 카네이션, 요즘은 붉은 빛의 꽃무릇으로 갈아입었다. 꽃무릇은 사람들에게는 상사화로 알려진 꽃이다.

지난 주말, 아내와 함께 큰노꼬메오름을 오른 적이 있다. 주차장에서 내려서 걷는 목장 길에는 꽤 오래된 우마의 배설물 냄새가 고향의 기억을 자극했다. 아내는 고약한 냄새라고 하나 나에게는 어릴 적 향수를 느끼게 하는 매개체다. 숲으로 들어서는 순간 마주 오던 산행객이 아내에게 말을 건넨다. 초행이라 동행하자는 얘기다. 조용히 아내와의 시간을 갖고 싶었지만 두 사람의 대화에서 멀어지려고 걸음을 재촉했다.

고난도의 산행이 시작되는 곳 평상에서 쉬고 있었다. 아내와 산행객이 다가와서 핸드폰에 찍힌 꽃 이름이 뭐냐고 물어 온다.

다행히 아는 꽃이다. 기다랗게 꽃대를 내밀고 피를 토하듯이 피어 있는 꽃, 꽃무릇이다. 무덕무덕 군락을 이뤄 자생하는 꽃, 겨울에 춘란과 같이 기다란 잎이 나서 봄까지 자라다가 6월이 되면 시들어 죽어 버린다. 그리고는 한여름이 지나 가을에 접어드는 9월이 되면 한 줄기 긴 꽃대만이 나와 선홍의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고 하여 신비함이 깃들어 있는 꽃이다. 젊은 수도승이 불국(佛國)을 염원하는 하얀 중적삼과 인간 내면에 남아 있는 본능적 욕구와의 갈등을 담은 꽃말 이야기가 전해진다.

얼마나 아름다운 여인이었을까. 속세를 떠나 수도하던 젊은 수도승의 가슴속을 애태우다 선혈을 내뿜으며 죽음을 맞이할 만큼이나 여인의 미모는 정녕 아름다움의 가치였을까. 아니면 젊은 수도승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던 그리움의 고향이었을까.

이맘때면, 연북로에 조석으로 피어 나에게 그리움을 전하는 꽃이다. 얼마 없으면 지고 사라질 꽃이지만, 내년이면 잎을 내고 또 다시 누군가를 기다리며 선홍색 꽃을 피울 것이다.

가을의 꽃은 변하는가. 과거에는 대표적인 꽃이 국화였다. 하얗게 피어난 국화는 장례식에서 망자와의 이별을 위한 슬픈 꽃이기도 하다. 같은 개체에 있으면서도 서로 보지 못하는 꽃무릇의 잎과 꽃처럼, 사랑하는 이와 함께 살다가 사별해야 하는 흰 국화는 같은 운명의 꽃인가.

삶의 가을 여행을 떠나 볼 만도하다. 춥고 따뜻하고 무더운 삶의 질곡에서 벗어나 한 번 더 돌아보는 쉼터가 가을 여행이다. 윤동주 시인은 ‘가을이 오면’에서 자신의 삶을 노래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삶이 아름다웠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오늘도 나는 연북로에 피어나는 꽃들을 보면서 우리에게 계절의 변화를 일깨워 주는 이들을 생각한다. 계절마다 새롭게 연북로를 단장해주는 공무원들의 노고에 감사를 드린다. 그분들에게도 지금 이 한철이 아름다움으로 풍성한 가을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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