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도 나무를 가려 둥지를 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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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원도심(구도심)은 숨은 이야기를 많이 품고 있다.

 

최근 제주역사문화연구소가 주관한 제주시 원도심 문화유산 탐방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그 덕에 원도심 구석구석을 걸으면서 미처 몰랐던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사실 제주시에서 30년 가까이 살았지만, 그 햇수만큼 도시와의 정은 도탑지 않았다. 아마 내면을 제대로 들여다보려 하지 않고 겉모습만 보고 지냈기 때문일 것이다.

 

칠성로 입구 면암 최익현의 유배터에서는 조선 말기 하늘을 찌르다시피 했던 흥선대원군의 기세에 굴하지 않고 서원 철폐 등에 대해 항의하며 수차례 상소를 올렸던 면암의 기개를 들을 수 있었다. 왕세자 책봉에 반대했다가 숙종의 노여움을 사 83세의 고령에 제주로 유배 온 우암 송시열의 유배터(칠성통 뒷골목)에서는 우암의 담대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제주 유배인 중 유일한 왕이었던 광해군은 재위 15년인 된 해(1623)에 인조반정으로 강화도에 유배되었다가 1627년 제주에서 4년여의 유배생활을 하던 중 67세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흔적은 남문로터리 부근 국민은행 제주지점 정문 앞에 표지석 하나로 남아 있다. 권력 무상이 저절로 떠올랐다.

 

▲유배터를 돌아보는 와중에 따라다닌 말은 ‘양금택목(良禽擇木)’이다. 슬기로운 새는 나무를 가려서 앉는다는 얘기다.

 

훌륭한 사람은 좋은 군주를 가려서 섬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춘추전국시대 때의 일이다. 공자가 나라를 다스리는 법에 대해 강연을 하기 위해 위나라에 갔을 때이다. 어느 날 공문자가 공자를 찾아와 대숙질(大叔疾)을 공격할 계책에 대해 물었다. 공자는 “제가 제사 지내는 일에 대해 배운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전쟁에 대해 아는 것은 전혀 없습니다”고 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물러 나와 제자에게 서둘러 수레에 말을 매고 떠날 준비를 하라고 말했다. 제자가 그 까닭을 묻자 공자는 “현명한 새는 좋은 나무를 가려서 둥지를 튼다고 했다(良禽擇木). 마찬가지로 신하가 되려면 마땅히 훌륭한 군주를 가려서 섬겨야 한다. 그러나 공문자는 섬길만한 인물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조선의 선비들은 공자의 말처럼 벼슬길에 나설 때 우선 자신이 모실 사람이 합당한지를 따졌다.

 

이에 따라 자신의 진퇴를 결정했다. 그 선택의 결과에 따라 유배인의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후에는 권력이나 양지를 찾아 손바닥을 비벼대며 해배(解配) 되기를 애걸복걸하지 않았다. 추운 겨울에 꽃을 피우지만,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梅一生寒不賣香)처럼 말이다. 격변(激變)의 소용돌이에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나? 새 같은 미물도 자기가 앉을 곳을 가려 앉는 데.

 

고동수 서귀포지사장 esook@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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