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초의 여유가 생명을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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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택.수필가/前 탐라교육원장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글을 배울 기회가 많지 않았다. 문명의 혜택도 받지 못했지만 환경도 녹록치 않아 글 쓸 기회가 적었을 것이다. 오히려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을지도 모르겠다. 춘궁기라 입에 풀칠하기에 하루하루가 힘들고 어려웠으나 그래도 정신적인 여유만은 잃지 않았으리라.

그러다가 점차 문명이 발달하고 사회가 복잡 다양해지다 보니 자신이 까막눈이라는 것을 자각했을 듯하다. 체면불고하고 만학의 꿈을 키우기 위해 칠순의 나이에 야학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오죽했으면 글을 배우는 게 평생소원이란 말까지 하겠는가. 한편으로는 측은한 생각도 든다.

요즘 세월을 거꾸로 먹는 사람들도 있는 세상이다. 글공부나 했다고 자부하는 정치인들, 사회의 지도층 가릴 게 없다. 글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여유도 없으니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지. 이는 이기심으로 팽배한 사회의 조급증이 불러온 병폐란 생각이 든다.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았다. 안에 들어서자 여기저기에 붉은 글씨로 금연이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한 젊은이가 식사를 마치고 버젓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금연이란 글씨가 보이지 않느냐고 넌지시 묻자 대뜸 “왜 간섭이냐”고 반문을 한다. 말문이 막혔다. 남이야 어떻든 자기만 편하면 된다는 뜻이다.

공원을 걷다보면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는 팻말이 꽂혀 있는 것을 본다. 그런데 놀다 간 자리에는 먹다 남은 음식이나 쓰레기가 그대로 나뒹굴고 있다. 사람들은 이 글을 보는 둥 마든 둥 비웃기라도 하듯 자기 본위다. 만사가 무용지물이다. 깨끗하게 뒤처리를 하고 가면 다시 그 자리를 찾게 되고, 남도 쉴 수 있는 공간이 될 텐데, 그럼에도 사람들은 무심코 자기 생각대로 한다. 더불어 사는 시민의식이 아쉬울 따름이다.

자동차를 타고 달리다 밖을 보니 ‘3초의 여유가 사람의 생명을 지킨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보는 순간 섬뜩한 느낌이 가슴에 와 닿았다. 차를 타기만 하면 광란의 질주였다. 그리 바쁜 일도 없는데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달렸다. 안전은 뒷전이다. 편리한 자동차도 한순간 잘못하면 생명을 위협하는 흉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진작 깨닫지 못했다.

잠시 생각하고 돌아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 속도 경쟁에 빠져 있는 세상에 가장 절실한 덕목이 아닐까.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가지려 하고, 높은 지위에 오르려는 유혹을 쉽게 떨쳐 버리지 못한다. 그러나 너무 가지려고 욕심을 부려도 원하는 것을 다 얻을 수는 없다. 오히려 그 과욕으로 인하여 더 크고 소중한 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조급하게 결과를 보고 싶어 하는 유혹에부터 한 발짝 물러서는 여유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 참된 만족은 무엇인가를 가지려고 애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여유를 갖는 데 있는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집 건너편에 감나무 한 그루가 있다. 봄이면 바싹 마른 가지에서 새싹이 돋아나고 여름이면 푸른 잎을 달고 햇빛을 받으며 자란다. 가을이면 열매를 열어 사람들에게 탐스러운 과일을 선사하며, 겨울이면 분주했던 일상을 멈추고 동면으로 들어간다. 계절을 거스르지 않고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킨다. 그 인내심과 여유가 가히 덕을 갖춘 도인(道人)의 풍모다.

속담에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데 지침으로 삼아야 할 덕목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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