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조선의 기간통신망 그물처럼 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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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으로 직접 통하는 직봉은 5개 노선

조선시대 봉수제도는 지역에 따라 경봉수(京烽燧), 연변봉수(沿邊烽燧), 내지봉수(內地烽燧)로 구분됐다. 경봉수는 전국의 모든 봉수가 집결하는 중앙봉수로 한양 목멱산(木覓山·남산)에 있었다.

연대라고도 불렸던 연변봉수는 전국 동서남북 해안과 국경의 최전선에 설치했다. 내지봉수는 중앙봉수와 연변봉수를 연결하는 중간봉수의 기능을 수행했다.

내지봉수는 직봉(直烽)과 간봉(間烽)을 합해 1150여 기가 그물처럼 전국에 퍼져 있었다. 변경에서 중앙으로 직접 통한 봉수가 직봉이며, 그 사이 보조 역할을 한 것이 간봉이다.

전국에는 5개의 직봉노선이 있었다.

제1로는 함경도의 경흥을 기점으로 강원·경기도를 거쳐 교신을 했다.

제2로는 경상도의 동래에서 경북·충북·경기도를 거쳐 중앙봉수로 연결됐다.

제3로는 압록강 중류에 있는 평안도 강계에서 황해·경기도의 내륙을 거쳐 통신했다.

제4로는 평안도 의주에서 서해안을 따라 내려와 중앙으로 연결됐다.

제5로는 전라도 순천 돌산도를 시작으로 전라·충청·경기도 해안을 거쳐 교신을 주고받았다.

제주도는 제5로에 포함됐다. 하지만 남환박물(南宦博物·1702년)에는 한라산 중턱에 봉수대가 있어서 전남 해남까지 통보한 적도 있지만 해무가 자주 끼면서 철폐했다고 기록했다.

이처럼 봉수는 조선 600년간 국가적 기간 통신망 역할을 했다. 해안과 국경의 안위를 횃불과 연기로 특정한 신호 전달 체계에 의해 병조와 승정원에 알렸고, 최종에는 왕에게 보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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