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름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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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 수필가

마당에 나갔던 남편이 들어오는 기척이 들린다. 이제 곧 그는 부엌으로 와서 팔이나 다리를 보여주며 이렇게 투덜거릴 것이다.


“야아! 모기들 지독하네. 잠깐 사이에 이렇게 물린 것 좀 봐.”


마당의 모기는 집안의 모기보다 훨씬 극성스럽다. 녀석들은 사람 냄새에 허겁지겁 달려들고 쉽게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 채소를 뜯고 들어왔는데 갑자기 간지러우면 어김없이 그것은 마당에서부터 나를 쫓아온 모기 때문이다. 물을 주러 나갔다가 모기에 물려 입이 부풀어 오른 남편의 모습은 긴 옷을 입으면 괜찮을 것이라는 내 말을 무색하게 한다.


모기약이나 모기향은 몇 번 사용해 보다가 그만두었다. 장소가 넓어 효과가 크지 않을 뿐 아니라 나도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모기가 번식할 환경을 만들지 않는 데에 있을 것이다. 방역업체에 부탁하자 정화조를 의심한다. 하지만 막상 열어보니 모기 유충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모기가 많은 것은 마당을 텃밭으로 사용하고 있어 약을 치지 않는데다가 물을 자주 주는 탓이 아닐까 짐작하는 것으로 끝났다.


모기장을 치는 것은 점잖은 자기 방어 방법일 것이다. 우리 집에서는 여름이 되기 무섭게 모기장을 꺼내 친다. 한밤중에 일어나 보면 어디서 날아왔는지 어김없이 불청객들이 찾아와 있다. 녀석들은 모기장이 열리는 순간을, 혹은 잠에 곯아떨어진 사람의 몸이 어쩌다 모기장에 닿아주는 행운의 순간을 밤새도록 기다리고 있을 태세다. 그렇게 대치상태로나마 무사히 하룻밤이 지나갈 수 있다면, 모기장을 치는 일이 귀찮기는 하지만 그냥 그렇게 공존하기를 택했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남편은 전기 모기채를 들고 와 시범을 보였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어떻게든 모기장 안에 들어와 있는 모기들, 배가 불러 굼떠진 녀석들을 보며 투지를 불태우던 그는 전기 모기채를 보자마자 얼른 사갖고 온 것이다. 


우리나라에 온 티베트사람들은 처음 파리채를 보고 놀란다고 한다. 파리나 모기가 보여도 잡지 않고 창문을 열고 나가게 해준다는 그들로서는 목숨을 빼앗기 위한 도구를 아무렇지도 않게 사고파는 세상이 섬뜩하게 느껴졌을 법도 하다. 나는 파리채를 바라보며 낯설어하고 충격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데에 놀랐다.


부모님은 집안에 파리가 보일 때면 막내인 나를 부르곤 했다. 파리채는 나에게 단순한 하나의 도구였다. 그것은 파리채를 가진 나와 날개가 달린 파리와의 싸움에서 내가 매번 이기지는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눈치채지 않게 살그머니 다가가 먼저 심호흡을 한 다음 파리채에 힘을 실어 내려치지만 나를 비웃듯 멀리 날아가는 녀석은 언제나 있었다.


전기 모기채는 나에게 낯설다. 그것은 파리채와 달리 목표물을 찾을 때 외에는 내 힘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나와 모기가 아니라 모기채와 모기의 대결인 것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나는 살짝 뒤로 물러나 있다. 그것은 백발백중이다. 그저 슬쩍 닿기만 하면 모기는 도망쳐볼 기회도 없이 죽음과 마주한다. 이상하다. 어쩌다 손으로 모기를 잡았을 때는 기뻐하던 내가 모기채에 걸려 불꽃을 내며 오그라드는 모기의 모습에서는 ‘살아있는 것의 죽음’을 본다.  


전기 모기채를 든 채로 바깥을 내다본다. 화창한 한낮 햇살이 내려앉은 나뭇잎들이 눈부시다. 한없이 평온해 보이는 저 풍경도 사실은 치열한 삶의 이야기와 엄숙한 죽음의 순간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문득 인간인 나의 삶은 알게 모르게 많은 다른 것들의 죽음이 받쳐주고 있다는 데에 생각이 미친다. 아무런 생각 없이 허비해버리기도 하는 나의 하루는 얼마나 많은 것들의 목숨과 맞바꾼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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