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 무렵 한양 거리로 나선 사람이라면 목멱산(남산)에 시선이 멎게 되리라. 봉화는 타다가 밤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간다.”(퍼시벌 로웰 ‘조용한 아침의 나라 조선’)
“봉화를 지피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은 신기한 신호에서 눈을 뗄 줄 모르고 각 봉우리마다 피어오르는 불꽃을 쳐다보게 된다.”(조지 커즌 ‘극동의 문제’)
구한말 우리나라를 찾은 서양인들에게 봉화의 모습은 이색적이었다.
횃불과 연기로 해안과 국경의 안위를 특정한 신호 체계에 의해 조정에 보고한 조선은 봉수의 나라였다.
4면의 바다로 둘러싸여 사방에서 시야가 트인 제주에서도 위급상황을 제주목사에게 알려야 했다.
조선시대 제주성 관할 중 서부지역에는 중앙봉수인 사라봉수를 정점으로 수근→조부→남두→애월→귀덕→우지→죽도→마두→배령→대포→두모→우두연대까지 12곳의 연대가 서로 교신을 했다.
사라봉수(건입동)에서 우두연대(한경면 용수리)까지 총길이는 42㎞다. 직선거리로 사라봉수~수근연대가 4.6㎞로 가장 멀었고, 다음은 배령~대포연대가 4.4㎞의 먼 거리에서 통신을 주고받았다. 대포~두모연대는 0.9㎞로 가장 가까웠다.
용담3동 용담레포츠공원 서쪽 해안도로에 있는 수근연대는 원래의 모습이 아니라 1978년 복원했다. 높이는 3.3m, 길이는 7.6m다.
외도2동 일주도로 ‘연대마을’ 인근에 있는 조부연대는 동쪽으로 도두봉 해안, 서쪽으로 하귀리 해안까지 시야가 트여 있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 기념으로 연대가 있던 자리에 ‘망루대’라는 콘크리트 정자가 들어섰다. 이 정자를 철거, 2010년 조부연대가 복원됐다.
애월읍 신엄리 ‘남뜨르’ 동산에 있는 남두연대는 해안과는 40m 떨어져 있지만 지형이 높은 절벽 위에 위치해 있다. 1977년에 복원돼 비교적 원형대로 보존되고 있다.
연대 밑에 큰 주춧돌이 사방에 있어서 1차 방호벽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애월읍 애월리에 있는 애월연대는 돌출된 해안에서 450m 정도 떨어져 있지만 ‘연대왓’이라는 언덕에 있어서 귀덕리 해안은 물론 수원리 해안까지 감시할 수 있었다.
하부 구조물로 1.2m 높이의 석축을 쌓았고 그 위에 4.8m 높이의 사다리꼴 모양으로 연대를 구축했다.
귀덕연대는 한림읍 귀덕초등학교 북쪽에 있었다. 조선 말기 연대 기능과 역할이 축소되자 이 자리에는 ‘망해대’라는 월대가 들어섰다. 1940년 귀덕초가 개교하면서 학교 뒤뜰에 편입돼 연대의 흔적은 사라졌다.
한림읍 귀덕2리에 있는 우지연대는 1976년 복원됐다. ‘우지’라 불렸던 우물(용천수)과 가까운 곳에 연대가 있었고, 지형이 높고 돌출된 곳에 위치해 해안으로 접근하는 적을 감시하는 데 제격이었다.
연대가 무너지지 않도록 바깥 테두리에 2단으로 돌을 또 쌓은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다.
죽도연대는 한림읍 한수리에 있었으나 민가와 도로가 들어서면서 원형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한림항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됐던 마두연대 역시 개발 행위로 자취를 감췄다. 마두포(馬頭浦)는 한림리에 있던 옛 포구 지명이다.
한림읍 금능리에 있는 배령연대는 평면이 원형에 가까워 원래는 둥근 모양의 석축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2005년 복원 당시 사각형 연대로 만들어 버렸다.
한경면 두모포구 인근에 있는 두모연대는 동쪽으로 대포연대, 서쪽으로 우두연대와 교신을 했다. 1930년대에는 포구 어등대(漁燈臺)로 이용됐다. 2004년 높이 4m, 길이 6.5m, 면적 31㎡로 복원됐다.
한경면 용수리 해안에 있었던 우두연대는 차귀도에 자주 출몰한 왜적을 감시하고 연락을 취했던 요충지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인근에 경찰초소가 들어서면서 원형이 사라졌다.
